매거진 엄마노트

가을이 내편이면 좋겠다

네 잎클로버의 신호

by 무쌍

활짝 핀 꽃처럼 네 잎을 하고 나를 빤히 본다.

'잠깐만' 같이 걷던 남편을 불러 세웠다. 무슨 일인지 아는 그가 이 동그래져 쳐다보는데, 나는 이 능력이 언제부터 생겼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키가 작아서 인지, 시력이 좋아서 인지, 자연의 전령이 알려주는지 알 수 없지만 난 가만히 앉아서가 아니라 그 곁을 지나다가 클로버와 눈이 마주친다.

뚱하게도 토끼풀밭에서 작정하고 찾을 땐 보이지 않는다.


남편은 ' 걸어가다 클로버를 찾는다'며 껄껄 웃는데, 다른 건 소질이 없지만 네 잎 클로버 찾기는 나도 신통하기만 했다. 야생화를 좇으며 꽃사진을 찍다 보니 생긴 기능일지도 모르지만, 유난히 도드라져 보이는 네 잎 클로버를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네 잎이 선명하게 보인다.






그래서일까? 걷다가 한눈에 쏙 네 잎 클로버를 찾을 때면 알 수 없는 에너지가 내게 신호를 보내는 것 같다.


잘하고 있어요.
계속하세요!


클로버는 나씩 내 손에 이끌려 노트에 붙여진다. '참 잘했어요.'스티커를 모으듯 모으다 보면 불안한 시간도 흘러가고 계절도 바뀌어갔다. 잘하고 있는 건지, 물어보고 싶은데 대답은 네 잎 클로버에게 듣는다. 운이 좋으면 늦은 가을에도 네 잎 클로버를 찾기도 했다. 다음 클로버를 찾을 때까지는 오늘 찾은 신호를 잊지 않려고 클로버 옆에 날짜를 적어두었다.


어른이 되면 시간이 많아질 줄 알았지만, 소녀시절 보다 내 시간이 나지 않는다. 나 혼자 방을 가져본 적도 없지만 아무도 없는 공간에 들어간 기분은 안다. 종종 그런 시간이 내게도 오기 때문이다. 바로 아무런 일정이 없는 날이다.

마치 지름길을 찾아낸 듯 속도가 난다. 자주 있지는 않지만 가장 멀리 나갈 수 있다.


그리고 오늘 같은 날은 초록의 힘을 빌린다. 네 잎 클로버의 신호를 무시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전부터 하고 싶던 계획을 다시 세운다. 용기가 없어서 숨겨둔 글을 꺼내 손을 본다.

용기는 반나절만에 사라지기도 하고, 며칠 씩 곁에 있기도 하지만 그렇게 오래 붙잡을 수는 없다. 그럼 노트에 붙여둔 네 잎 클로버를 보면 된다.


나를 빤히 보는 네잎클로버(2023.08.29)


지난번 네 잎 클로버를 찾고 나서 한 달만인 것 같다.

한동안 찾지 못했다. 늘 같은 산책로를 걷지만 클로버를 찾는 장소는 항상 다른 곳이다. 게다가 여름 내내 풀 깎는 기계가 다녀가고 또 잡초제가 하는 손이 많았다. 응달진 곳은 아직도 야생초의 그루터기가 선명한데, 토끼풀이 돋아날 시간이 귀했던 것이다. 칭찬받을 일이 없었던 아이처럼 클로버가 너무 반가웠다.


여름 동안 완벽한 계획을 세웠다가 늦더위에 조급해져서 용기가 증발해 버렸다. 이럴 땐 저 멀리 미국에 살던 에밀리 디킨슨처럼 방문을 걸어 잠그고 싶다. 셰익스피어 전집을 펼쳐 말려둔 식물표본을 정리하거나, 며칠 전 쓴 시를 깨끗한 종이에 옮겨 적으며 단어를 고치면서 말이다.


오늘 찾은 클로버를 노트에 붙여두며 가을을 맞이한다.


클로버의 응원도 얻었고, 차츰 선선해진 날씨는 도서관 가는 길도 수월하게 느껴졌다.

가을을 내편으로 만들어 볼 작정이다. 읽을 책 목록을 들고 밀린 약속을 지키듯 차례차례 쌓아 올렸다. 운이 좋게도 목록에 적어둔 책들이 서가에 다 꽂여 있었다. 또 마음이 조급해졌다.


다른 일들이 들이닥치면 또 글 쓰는 시간은 멀어질 테니까 말이다. 을이 내편이면 좋겠다.


"잘하고 있어요. 계속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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