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엄마노트

화가였지만 화가의 아내가 된 그녀

조 호퍼와 조세핀 나비스

by 무쌍

1924년 마흔이 넘은 두 사람이 만나 결혼을 했다.

음악교사였지만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조세핀은 뉴욕아트스쿨에서 편이 될 그를 만다.


그녀의 이름은 조세핀 나비스 결혼 후엔 조 호퍼란 이름으로 불렸다. 녀의 남편은 미국의 사실주의 화가로 불리는 에드워드 호퍼다.


남편의 작품활동을 도와 긴 자동차여행을 떠나야 했고, 여행 내내 운전을 못한다며 짜증 내는 걸 들어야했다.

남편은 요리를 전혀 하지 않았고, 그녀 없이는 식사를 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녀가 요리를 하고 싶지 않아 하는 걸 굉장히 싫어했다. 게다가 남편의 그림에 언제든 등장하는 모델이 되어야 했다. 운이 좋은 호퍼는 성실한 아내의 내조로 전적으로 작품활동에만 몰두할 수 있었다.


그녀의 재능은 남편의 내조 뒤에 밀려서 발휘할 시간이 없었다. 호퍼가 훗날 스튜디오에서 작업을 하기 시작하자 그녀도 그림을 그릴 시간을 갖게 되었지만, 남편의 스튜디오에 비하면 집안은 어둡고 남루했다.


40년 넘게 부부로 지냈고, 남편이 죽은 이듬해 사망할 때까지 그녀는 그의 그림자였다. 퍼가 사망한 후 남편의 작품들과 상세한 자료들을 정리했고, 뉴욕 휘트니 미술관에 기증했다고 한다.


화가의 아내로 마지막 한 일이었고, 화가로 남고 싶었던 그녀의 마지막이었다.


기증 목록엔 그녀의 작품도 있었다고 하지만 그녀의 그림은 알려지지 않았다. 그녀의 그림을 보고 싶었지만 검색만으로는 찾을 수 없었다.


동등한 입장에서 부부 관계를 유지한다는 건 쉽지 않은 듯싶다. 지의 시대에도 논란이지만, 반세기 전 전통적인 가부장이 이상하지 않았던 때엔 불가능에 가까웠을 것이다. 녀가 가를 꿈꾸었다고는 하지만 무명의 남편이 화가로 성공하는 일도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가사 분담과 양육 사이에서 여자는 더 많은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다. 결혼을 하고 나선 가사 일의 주체가 누가 되어야 하는지가 문제이고, 아이를 출산하고 나선 달라진 몸을 받아들여야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는 혼자가 아닌 일상으로 바뀐다.


나 역시 모든 것을 다 하면서 글을 쓰는 일은 쉽지 않았다.


남편은 190cm 키에 과묵하고 내성적인 사람이었고, 그녀는 155cm 키에 남편과는 정 반대의 성격이었다. 문제는 남편의 폭력이 언제부터 인지 모르지만 그녀는 모두 감당했다는 것이다. 편에게 맞고 산다는 이야기를 솔직히 털어놓는 곳은 그녀의 일기장이었다.


그녀는 일기에서 자신을 억압적이고, 지배적인 남편 밑에서 힘들어하는, 좌절된 예술 영혼의 이미지로 표현한다. 여기서 두 사람 모두 좋은 모습으로 그려지지는 않는데, 그녀는 자신의 다양한 좌절감을 일기를 통해 표출했다. 그녀와 호퍼 사이의 폭력적인 대결, 그가 얼마 잔인할 수 있는지 (우리가 예상하기 힘든 종류의) 그리고 그녀가 그를 물고 할퀴며 자신을 방어한 사실을 기록했다.

호퍼와 그녀의 애증 관계는 1938년 3월 10일 자 일기에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의 얼굴에 길게 상처가 두 개 생겼다. 보통 때는 내가 참 좋아하는 그 얼굴에."

- 펄프 퀴스터의 책 <호퍼 HOPPER A-Z>


남편인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은 칭송되고 너무나도 유명해서 사진작가, 작가, 영화감독, 심지어 요즘 광고작업에도 영감을 주고 있는데 말이다. 그녀도 남편의 그림 속 뮤즈로 사람들에게 소개되지만 모델일 뿐이다.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 나이트호크 1942년작>

아내가 모델이고 남편은 화가라는 건 분명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부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그녀의 일기 속 이야기는 공공연한 비하인드 스토리가 되었다. 기록의 힘은 대단하다.


화가 난 그가 손찌검을 하면 그녀는 저항하듯 그를 물었다고 하지만, 그녀는 마음의 병을 앓고 있었을 것이다. 맞고 사는 아내의 전형일지도 말이다.

<호퍼 HOPEER A-Z>라는 책을 다 읽고 나니 미국의 대표 작가라고 불리는 호퍼가 혼자 그림을 그렸다고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세상에 홀로 일어서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누군가의 희생을 맘 놓고 쓰는 건 아닌지, 아니면 그 반대는 아닌지 혼란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그건 아마도 나도 그녀와 같은 누군가의 아내이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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