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엄마노트

투스카니의 태양과 서울의 태양

8월 태양

by 무쌍

가장 좋아하는 것들 중에 하나는 '8월의 태양'이다.

름의 열기를 는 강렬한 태양은 새하얀 빛으로 눈을 작게 만든다. 한껏 열이 오른 몸은 른하게 물거리며 냉정함은 아버리고 사물을 감각적으로 보게 되는 여름 태양 사랑한다.

이 나서 시원함에 이끌리기도 하지만 마른침을 삼키며 목마 날숨은 살아 있음을 확실히 느끼게 해 주었다.



8월은 바짝 마른 풀잎을 더 부시는 듯 쏟아지는 태양이 지루하기도 하지만 어느 계절보다 맛있게 물을 마실 수 있다.

커피보다도 물을 자주 마시지 않는 나는 8월 가장 많은 생수를 들이켜게 된다.

고급 생과일 음료도 아니고, 수도꼭지에서 쏟아지는 생수일 뿐이지만 시원하게 목을 적혀주는 오아시스 같은 달이다.


입맛이 없어 반나절 굶다시피 하고 나서 마시는 미지근한 물 한잔은 중독성이 있다. 물은 마실 수록 차갑게 느껴지고 온몸이 서늘해지면서 어느 때보다 똑똑한 판단을 할 수 있다. 난 어느 때보다도 8월에 새로운 시작을 했다. 마치 새해 작심 한 듯 안 하던 일을 계획한다.


아직도 시작은 두렵다. 무엇보다 자신에게 실망할 까봐, 예상했던 대로 될까 봐 그렇다. 그래도 여름 태양의 힘을 기대하기로 했다. 여름과 가을이 섞인 공기를 실컷 마실 늦여름을 기다렸다.


그런데 핑계가 하나 생겼다. 8월은 내게 방학한 아이들을 돌보는 엄마노릇을 두고 도망갈 수 없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늘이 하나 없는 길 위에서 모자를 눌러쓰고 걷고 싶지만, 금방 소박해진다. 어디까지나 글쓰기에만 써야 하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온몸에 솟아 나는 땀을 충분히 흘리고 만나는 나무 그늘을 항상 그리워했다. 어린 날 누군가의 품처럼 숙했다.



작년 8월에도 같은 영화를 보았다. 이탈리아의 투스카니를 배경으로 한 20년 전 영화 한 편이었다. 보는 것만으로 끈적한 여름이 느껴지는 이탈리아의 투스카니를 실컷 볼 수 있다.


영화 투스카니의 태양의 스틸 컷

영화: 투스카니의 태양 (Under the Tuscan sun)


아름다운 자연 풍경 이색적인 장소, 처음 보는 캐릭터들과 아름다운 여자 주인공은 작가 그것도 베스트셀러 작가였다.

영화란 자고로 이래야 맞다. 잠시 영화를 보는 동안만은 다른 시간과 공간으로 가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길 바라기 때문이다.


20년 전 다이안 레인과 산드라 오를 볼 수 있다니 그녀들은 지금도 세월을 거스른 외모를 가지고 있지만, 영화에선 좀 더 풋풋한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이혼을 한 주인공이 모든 것을 정리하고 이탈리아로 간다는 설정은 파격적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작가이기에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다. 글은 어디서든 쓸 수 있으니 말이다.


상처를 가진 사람, 붙들 수 있는 것들이 없는 사람이라면 모든 것을 리셋(Reset) 해 보고 픈 충동을 가질 수도 있겠다 싶었다. 화를 보다 보면 리셋은 사는 곳을 바꾼다고 되는 것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답답한 현실에서 꿈을 꾸는 일이 쉽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 내가 젊은 시절로 돌아간다고 해서, 주인공 그녀가 다시 결혼 전으로 돌아간다고 해서 불행을 피할 수 있었을까?



자신만을 사랑해 줄 것 같은 남자와 이혼한 이유가 진정한 사랑을 만나지 않았기 때문일지 모른다는 생각도 영화 속에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영화도 현실을 반영한 것! 영화 같은 이야기는 일어나지 않았다. 물론 영화를 끝까지 본다면 그녀가 홀로 남는지 누굴 만나는지 확인할 수 있다.


주인공 프란시스가 다른 남자와 결혼을 했다면, 그녀는 다른 삶을 살았겠지만 그건 상상일 뿐이다. 문제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마음이라는 걸 잊지 말아야 했다.

영화를 다 보고 나니 여름은 그냥 여름으로 즐기고 싶어졌다. 충분히 느끼고 나서야 다른 계절이 반가울 듯하다.


<투스카니의 태양> 속 유명한 영화 대사다.

알프스에 비엔나와 베니스를 잇는 철도를 놓았다고 한다. 기차가 다니기도 전에 미리 만들어 놓은 것이다. 언젠간 기차가 올 줄 알았으므로...
뜻밖에 일은 항상 생긴다.
그로 인해 다른 길로 가고
내가 달라진다.

새로운 시도는 과거를 버려야 가능하겠지만, 어쩌면 새로운 시도를 하면 기존의 것들은 과거가 될 것이다. 무언가 바꾸고 싶다면 시작 버튼을 눌러야 한다. 그리고 그 버튼을 누르지 않고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냥 눌러서 ON이라고 표시만 바꾸어도 되지 않을까?

꿈을 꾼다. 그녀처럼 작가가 되는 나의 소설을 읽은 팬을 만나는 상상을 해본다.


모든 것이 영화지만 그녀가 나이길 바랐다.
나도 그러고 싶다. 보름달이 떠오른 며칠 동안
이룰 수 없는 소원처럼 빌었다.

작가인 그녀의 책상 위에 놓인 투스카니의 해바라기 한송이와 창밖의 풍경,
그리고 베스트셀러 작가인 그녀가 나인 것처럼


분홍으로 물든 하늘(2023.08.02)

서울의 태양은 하루 종일 이글거렸다.

늦은 저녁 태양은 떠나기 아쉬운 듯 분홍색으로 구름을 물들였다. 석양이 다 사라져서 회색 구름으로 바뀔 때까지 아이와 함께 예쁜 구름 찾기를 했다. 서울의 좁은 아파트 복도였지만, 우린 드넓은 투스카니 언덕을 걸어가 듯 시선을 가능한 멀리 두었다. 하늘 끝에서 부터 끝까지 태양의 흔적을 쫓아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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