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치듯 자란 야생초가 정돈되지 않은 오솔길이었다. 야생초들은 제 맘대로 자라 온통 덤불이었다. 그 길 입구에 분홍색 코스모스가 피어 있었다. 오솔길을 따라 가면 야생화를 더 많이 볼 것 같았다.
'덤불 사이로 뱀이 기어 나오면 어쩌지? 잠시 머뭇거렸다. 그래도 살살 바람에 흔들리며 코스모스가 자꾸만 괜찮다며 날 부르는 듯했다. 그늘진 어둠이 무섭지만 용기가 생겼다. 풀만 가득한 곳이지만, 꽃들이 비추는 대로 혼자 가보고 싶어졌다.
오솔길로 들어가니 다른 세상이 보였다. 조금 뒤 속으로 '용기 내길 잘했네!' 소리가 났다. 사람 손이 닿지 않은 야생의 정원엔 자연 그대로 자유로움을 즐기는 꽃들이 있었다. 있는 그대로 피어난 꽃들은 더 짙고 깊은 색을 뿜어냈다. 야생화가 보이는 대로 사진을 찍으며, 오솔길을 들어서길 잘했다며 안심했다.
코스모스, 나팔꽃, 유홍초, 달맞이꽃,애기나팔꽃(2020.09.25 중랑천) 진한 파란색의 손바닥만 나팔꽃이 탐스럽고, 아기 입술처럼 귀여운 진홍색 유홍초, 여전히 밝은 달빛을 내는 달맞이꽃이 보였다. 애기 나팔꽃 덩굴은 큰 망토처럼 덤불을 덮었고, 흰색과 자주색의 작은 꽃은 망토 장식처럼 달렸다. 좁은 오솔길은 양쪽이 모두 빽빽한 덤불이라 움직일 때마다 야생초들이 몸에 닿았다. 발을 내디딜 때면 까슬한 덩굴손을 가진 환삼덩굴이 발목을 붙잡았고, 바랭이 풀과 강아지풀이 계속 팔을 간지럽혔다.
내가 움직이는 소리가 아닌, 누군가가 내는 부스럭 소리가 들렸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주변을 살피느라 멈춰 섰다.
더 이상 부스럭 거리는 나지 않았지만, 머릿속엔 어릴 적 뱀을 만났던 날이 떠올랐다. 귤밭에서 가장 빨리 집으로 가는 오솔길이었다. 평소에는 도마뱀이 자주 나타나는데, 그날따라 작은 뱀이 두 마리가 덤불에서 고개만 내밀고 있었다. 갑자기 내가 나타나자 나보다 더 놀란 듯 뱀은 덤불 안으로 사라졌다. 그날처럼 뱀이 나오진 않았지만 아무래도 안심이 되지 않아, 성큼성큼 걷기 시작했다.
멀리 사람들이 보였다. 오솔길이 끝나는 곳이 어디인지 보이기 시작했다. 걷는 동안 야생초들이 내 몸에 달려들 듯 다가왔지만, 그저 풀이 뻗은 줄기였다. 앞에 갈 곳이 선명하게 보이는데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얼마 전 본 영화가 생각났다.
영화 <미나리>에서 순자 할머니가 뱀을 보고 놀란 손자에게 "보이는 게 안 보이는 것보다 나아. 숨어 있는 게 더 위험한 법이야."라고 말하며 꼭 끌어안았다.
실제로 뱀을 봤다면 몸이 얼어붙은 듯 두렵고, 뱀이 어디로 갈지 살폈을 것이다. 조심히 뱀과 거리를 두며 내가 안전한 곳으로 움직일 것이다. 그리고 순자 할머니가 말한 대로라면 두려움은 덤불 뒤에 뱀이 아니라 생각에만 존재하는 수많은 걱정일 것이다.
얼마나 걸었을까? 코스모스 화단이 만들어진 아스팔트에 도착했다. 그리고 방금 나온 오솔길을 보며, 안도를 했지만 동시에 소름이 돋는 기분을 느꼈다. 도망치듯 서둘러 나왔지만, 그 길을 걸었던 것은 나에게 의미가 있었다. 삶의 갈래 길도 길마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눈앞에 예상치 못한 길이 나타났다.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내겐 거부권이 없었다. 할 수 있는 건 길을 따라 걷는 것뿐이었다.
산책이 필요했다. 걷기 시작했지만 깨끗하게 정돈된 길 위에선 나만 엉클어진 듯 초라했다. 금방 기분이 풀리지 않았다. 눈앞에 반짝이는 코스모스가 핀 오솔길이 보이자 빨려 들 듯 들어갔다. 내 기분처럼 어수선하고 뒤죽박죽 엉클어진 덤불 속이었다. 마음 놓고 짜증을 낼 수 있을 듯했다.
오솔길 덤불 앞에 핀 코스모스@songyiflower인스타그램 머릿속 복잡한 심정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오솔길은 뒤엉켜 있었다. 흙이 드러난 좁은 길을 거침없이 걸었다. 마치 거친 파도가 이는 물길을 헤엄쳐 나오듯 쉬지 않았다. 야생초들이 내 몸을 붙잡았고, 꽃들이 잠깐씩 나타나 날 안심시켰다. 오솔길은 그리 길지 않은 듯했지만, 벗어나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그래서일까? 오래 미뤄뒀던 책상 정리를 한꺼번에 해치운 기분이었다.
떨쳐버리고 싶던 두려움도 오솔길 어딘가에서 잃어버렸다. 다시 글이 쓰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