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잘될 줄 알았다

구절초

by 무쌍

냉장고를 꽉 채운 음식들이 추석 연휴와 함께 사라졌다. 투명한 선반이 조명에 반짝이며 모두 한눈에 들어왔다. 텅 빈 선반은 유리 장식장처럼 보여 낯설었다. 먹을 만 한건 다 먹었나? 싱크대 수납장을 열어보니 남은 건 라면과 통조림 몇 개였다. 요일별로 들쑥 거리지만 아이들은 다시 등교하기 시작했으니, 장바구니를 들고 가야 할 곳은 동네 마트였다.


에키네시아가 피었던 자리에 구절초가 찾아왔다. 꽃을 보니 한결 기분이 좋아졌다. 구절초가 무성하게 핀 꽃무리를 찾지 못했지만 한송이 구절초는 충분히 마음에 들었다. 한송이 새초롬하게 빗물이 남은 꽃을 멍하기 쳐다보다 펑펑 울다만 아이 얼굴이 겹쳐 보였다.

구절초가 피었다 @songyiflower인스타그램

독립하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아빠가 떠났다. 그래도 일을 하며 미래를 준비했다. 결혼하고 얼마 되지 않아 내 가족이 다른 친정집과 같지 않아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도 남편과 아이 새로운 가족이 생겨서 괜찮았다. 직장에서 원하던 자리에 승진을 했을 때 갑상선이 고장나버렸다. 그래도 호르몬제를 먹으며 몸은 느리지만 서서히 되살아 났다. 그 뒤로는 사연이 더 생기지 않을 줄 알았다. 모든 것이 잘될 줄 알았다. 긍정적인 생각을 하며 결국엔 잘될 거라고 믿고 살아온 건 오래된 습관이고 소신이었다.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에게 늘 그랬다.

"결국 6학년 졸업을 할 때 네가 배운 것이 완성되는 거야."

아이에게 그 말을 하는 속마음은 엄마인 나도 인생의 끝에 그 보람을 볼 수 있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등결과 성, 우리 인간은 결국엔 같은 종착지로 가지만, 각자 과정은 모두 다르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아차' 잊고 있었다. 삶은 계속된다는 것을 끝나는 때가 언제라는 건 모른다는 것이다. 갑상선이 고장 난 몸을 추스르며, 다시 길을 만들고, 꿈을 세우고, 그 안에 나무와 꽃을 심었다. 나무처럼 든든하고, 꽃처럼 고운 그런 아이들을 낳았으니 그것으로도 감사할 일이었다. 그래서 시작한 글쓰기는 나를 학교로 다시 보낸 듯 공부하게 했다. 구구절절 사연을 쓰지 않고, 감정만 쓰기 시작했다. 조심하며 감정만 쓰는 줄 알았는데 속사정도 슬쩍슬쩍 단어가 되었다.


또 모든 것이 다 잘될 줄 알았던 마음은 부서지고, 자는 이불을 붕대처럼 칭칭 감고 잤다. 하룻밤은 잤는데 별로 달라지지 않고 여전히 아물지 않는다. 다시 주문을 외우려고 했더니 머릿속이 멍해졌다. '결국에 다 잘될 거야.'라는 말이었는데 하고 싶지 않았다. '다 잘되긴 뭘 그전에 내가 부서지면 무슨 소용이야!'


이젠 '모든 것이 다 잘될 줄 알았다'를 좀 수정해야 할 시간인 듯하다. 덮어놓고 긍정을 바라기엔 예고도 없이 뒷목 잡을 일들이 나를 찾아온다.

경험은 가장 혹독한 배움이었다. 경험은 쓴 커피처럼 마시면 입이 쓰고 속이 쓰렸다. 그리고 포기해야 할 것은 앞으로 나쁜 일은 '오지 않을 기대' 그것이었다. 점점 강도가 센 경험을 했다고 느꼈지만, 사실 점점 단련이 된 것이었다. 문제들이 생길 때마다 그 수만큼 해결책이 적힌 처방전이 만들어졌다. 정말 의사의 처방이 필요하기도 했고, 스스로 치유할 줄 도 알게 되었다.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 흰구름처럼 구절초가 만발한 화단을 만났다. 지독한 담배연기를 피해서 다른 골목에 들어섰는데, 두 팔로도 안지 못할 만큼 큰 꽃다발을 한 구절초가 기다리고 있었다.


스마트폰 포토 어플이 종종 지난 사진을 보라고 알람을 한다. '지난 자신의 추억을 확인해보세요.'를 따라 들어갔더니 6년 전에도 4년 전에도 은 날짜에 구절초가 피었다. 구절초 사진들 틈에 눈이 동그란 아이 사진들도 함께 있었다. 금 내 앞에 구절초 사진은 또 먼 미래 나에게 어떤 기억으로 소환될까? 그리고 내게 가을 구절초가 말을 거는 것 같았다.


"지금은 구절초의 시간이고, 당신의 시간입니다. 모든 것이 잘 될 거라고 미래를 당겨오지 말고, 지금 나를 보세요. 향기롭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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