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냥한 사람을 만나고 싶다

상냥함

by 무쌍

익숙한 악몽을 꿨다. 기억이 정확하지 않지만, 비슷한 꿈을 꾼 건 린 시절부터인 듯했다. 한동안 나타나지 않았는데, 갑자기 반갑지 않은 손님처럼 찾아왔다. 전혀 모르는 사람이 나오거나 잘 아는 지인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내용은 똑같았다. 모두 화난 얼굴로 내게 일을 시킨다.


한 사람이 하라는 대로 해주고 나면, 또 짜증 나는 얼굴로 다른 사람이 타나 일을 시킨다. 그 일이 마무리가 됐나 싶었는데, 또 입을 꾹 다문 사람이 들어오더니 말없이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때쯤에 꿈속이라는 것을 알다. 악몽 속에서 약한 두통이 느껴졌다. 눈을 뜨고 나니 꿈은 끝이 났다. 나에게 무슨 강박이 있는 걸까? 불편한 마음 뒤로 무의식에 숨어 있는 것이 궁금해졌다.


은행나무 길을 걷다가 꽃 한 송이를 만났다. 분홍 과꽃 한송이가 부드럽게 날 부르며 고개를 살짝 돌려주었다. 내가 일부러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상냥하게 꽃은 날 불러 세울 줄 알았다. '볕이 잘 들지 않는 담장 아래에 언제 피어난 걸까?' 며칠 전에도 보지 못했데 말도 없이 날 만나러 와 준 듯했다. 꽃은 누구에게든 있는 그대로 호의를 보여준다. 꽃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건 꽃이 가진 아름다움과 상냥함 때문이다.

산책로를 걷다 보면 저 앞에서부터 겁을 주는 사람들이 있다. 절대 양보를 하지 않을 기세로 곧바로 내게 걸어온다. 내가 비키지 않으면 몸을 들이받을 태세였다. 몇 발자국을 남겨두고도 내가 눈앞에 없는 사람처럼 대했다. 급하게 길 옆으로 물러섰다. 그런데 아무 말도 없이 쌩하고 지나간다. 왠지 부당한 대우를 받은 기분이 들었다.

중랑천 코스모스 꽃밭은 좁은 길을 따라 걸어야 한다. 누구 하나 물러서지 않으며 내게 비켜서라는 듯했다. 먼저 길 옆에 서기를 서너 번 반복하다 보니 마음이 불편해졌다. 그때 내 앞으로 할머니가 다가와서 한발 뒤로 빼려는데, 그분도 한발 양보를 해주셨다. 곧바로 게 웃으며 먼저 "고맙습니다."라고 인사하셨다. 심을 전해주시는 그분에게 꽃만큼이나 아름다운 향기가 나는 듯했다.

꽃처럼 상냥한 사람들만 만나고 싶었다. 처음 보는데도 이유 없이 날카로운 눈을 한 사람이 아닌, 웃는 주름이 깊게 잡힌 사람을 만나고 싶다.

앞으론 실망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동안 내가 먼저 호의를 베풀었다며, 타인에게 같은 기대를 한 건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내가 먼저 상냥해야 한다는 고집도 버리기로 했다.


상냥한 순간은 계산되지 않은 것임을 알게 되었다. 꽃이 피는 것만큼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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