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새벽 코스모스 꽃밭을 나 홀로 독차지했다. 꽃밭 옆에 흐르는 중랑천을 보며 마스크를 슬쩍 내렸다. 물가에서 맡아지는 특유의 냄새와 섞인 가을 향기가 더 그윽하게 물결처럼 잔잔히 몸으로 들어왔다.
자연이 주는 건강함을 기꺼이 받고 싶어 얼른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야생이 준비한 선물이 내 마음에 쏙 들었다.
가을 코스모스를 이제야 만났다. 봄꽃 잔치 속에 다른 꽃들과 섞여 피었다가 '가을도 아닌데 웬 코스모스?' 라며 핀잔을 들었는데 같은 자리에 보란 듯이 피었다. 봄에 핀 모습과는 달리 확실히 주인공이 된 풍경을 보니 자리를 찾은 듯 편안해 보였다.
중랑천 코스모스(2021.9.12)@songyiflower인스타그램 사실 코스모스는 이름이 따로 있다. '살살이꽃'이라고 우리말로 부르는데, 더운 여름 잘 보냈는지 살살 달래주려는 듯 가을이 왔음을 알려준다.
야생초들이 뒤섞인 채 핀 코스모스는 다른 풀들이 괴롭히던 말던 꿋꿋하다. 아직 동그랗고 작은 꽃송이가 더 많은 줄기들 틈에 유독 우뚝 솟은 한송이가 나를 보며 웃는다. 아직 만발해지려면 좀 더 기다리라고 말을 건넸다. 자꾸 보러 와 달라며 살살 애교를 부린 듯했다.
산책로를 따라 걷는 내게 바람이 날아 들어오는데, 바람이 밀며 꽃송이는 일제히 나에게 고개를 돌려주었다.
날이 좀 밝아지자 꽃밭을 찾는 사람들이 보였다. 꽃의 앉은자리는 정해져 있지만, 사람들은 쉴 새 없이 왔다가 사라졌다. 잠시 그곳을 지나는 사람들을 지켜봤다.
할머니가 물끄러미 꽃을 보다 사진을 찍으셨다. 할머니가 돼도 나 역시 저렇게 꽃을 찍고 있겠구나 싶었다. 힘차게 걸어오는 젊은 아기 엄마는 포대기에 아기를 안고도 지친 기색이 없었다. 아주 상냥하고 밝은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는 아기에게 쉼 없이 말을 하고 있었다. "우리 운 좋다. 꽃도 보고 행복하네. 가을이니까 코스모스가 폈어." 라며 내 앞을 지나갔다. 문득 유모차를 밀며 수없이 다녔던 때가 생각났다. 내가 코스모스 앞에서 사진을 찍는 동안 바람에 흔들리는 꽃을 잡으려고 아이손은 손뼉 치듯 바빴었다.
부부가 쪼그려 앉아 자식 이야기를 하면서, 손가락은 클로버를 뒤적이고 있었다. 아마 네 잎 클로버를 찾는 듯했다. 금방 일어나지 않는 걸 보니 아직 찾지 못한 듯했다.
바람이 부르는 대로 좀 걸었다. 코스모스가 꽃다발처럼 핀 자리를 찾았다. 사진을 찍고 있는데 한 아주머니가 "사진 찍어서 친구들한테 보내줘야지."라며 내 곁에 멈추며 사진을 찍었다. 혼잣말이 너무 크게 들려서 놀랐지만, 꽃을 찍는 그분도 어색하기 마찬가지였나 보다. 그렇게 오랜 시간도 아닌데,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내 눈엔 꽃보다 이슬에 젖은 강아지풀이 더 시선이 갔다. 그리고 야생초가 섞인 꽃밭에 덜 자란 꽃들 사이로 빈 공간들이 더 잘 보였다. 코스모스가 곱게 피었는데 내 마음을 다 꽃만으로 채울 수 없었나 보다. 자꾸 딴청 피며 멈췄다가 걷고, 걷다가 멈췄다. 백신을 맞고 늘어졌던 몸이 좀 돌아온 듯했지만, 일상 속의 긴장감은 버거웠다. 물가로 가서 물감처럼 살살 풀어 흘려보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songyiflower인스타그램 -어디든 내가 있었다 코스모스 꽃 사진은 몇 장 찍지도 않고 되돌아오는 길이었다. 클로버를 찾던 부부의 손에는 서너 개의 네 잎 클로버가 들려 있었다. 찾는 자에겐 원하는 것을 얻을 기회가 분명 있는 듯했다. 무엇을 찾던지 갖는 자가 임자인 듯 말이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 뭔가를 찾거나 얻은 듯 기운이 넘쳤다.
나도 그들처럼 기운을 되찾고 싶었다. 사람들 모습에서 나를 보는 듯 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보니 어디든 내가 있었다. 아름다운 풍경 속에 있으니 자신감이 생겼다.
꽃과 같은 사람들 틈에 섞여, 나도 더 깊은 인생의 길로 들어서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그토록 꿈꾸던 길을 가고 있다는 걸 확인하고 싶었다. 지금은 글을 쓰는 사람들 틈에 있으니, 글 쓰는 나를 만끽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