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래전부터 읽는 사람이었다. 텍스트로 쓰인 건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가끔은 식료품 포장지에 쓰여 있는 설명 문구에서 마음에 드는 표현을 얻을 때도 있었다. 전혀 생각지 못한 영감을 얻는 기회는 사실 텍스트를 볼 때 생겼다.
책만 보면 난 가슴이 두근 거린다. 책은 비슷한 듯 다른 얼굴을 하고 있지만 모두 친구를 삼고 싶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책을 수집하듯 모으는 일은 계속할 수 없었다. 책은 페이지가 많을수록 무겁고, 자주 꺼내보지 않는 책은 먼지가 쌓였다. 모두와 친구가 될 수 없었다.
작년에 이사 오느라 책장을 비웠다. 300권 넘게 정리를 했지만, 아직도 100권 책이 남아있다. 주로 꺼내보는 책은 정해져 있다. 그리고 책을 구두쇠처럼 사들인다. 거의 사지 않는다는 표현이 맞는 듯하다. 쇼윈도에 걸린 신상옷을 보면 유행 따라 입어보고 싶지만, 나는 유행에 민감한 편이 아니다. 책도 신간도서를 기웃거리지만 금방 사지 못한다. 옷을 사 입기 전에 입어보듯 책을 사기 전에 여러 번 고민을 한다. 그리고 사전처럼 꺼내 볼 수 있는 책이라고 판단이 되면 구매를 한다.
책을 보는 방법은 구매가 아니어도 충분히 많다. 게다가 모두 사서 읽는 구매력도 안되지만, 소장할 공간 능력도 떨어진다. 대부분 도서관 대출로 책을 읽거나, 소장 중인 책들을 다시 꺼내본다. 책을 여러 번 보는 편이라 몇 번이고 다시 읽기 때문이다. 늘 새로운 책이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책을 펼치면 '가장 좋아하는 친구'를 만난 듯 설레었다. 그리고 잠깐이라도 수다를 떨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집안을 책으로 다 채우고 싶은 적도 있었지만, 책은 늘리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두 권을 사면 소장 중인 두 권을 처분하는 식으로 말이다.
읽고 싶은 책이 생겼는데 근처 도서관을 모두 검색을 해도 소장 중인 곳이 없었다. 온라인 서점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출판 연도는 7년이 지났고 책을 판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중고서점 사이트에 판매 중이었다. 읽을 방법은 중고서점 구매뿐이었다. 오랜만에 책 두 권을 샀다. 그리고 빈 노트를 꺼냈다. 책을 읽는 동안 시끄럽게 떠들며, 즐거운 마음들을 써내려 갈 것이다.
한참을 쓰는 사람으로 살다 보니, 읽는 사람은 외로웠던 모양이다. 쓰는 사람은 아직 초보라 서툴고 에너지를 많이 써야 한다. 한결 수월하게읽는 사람으로 돌아가 새로운 두 친구와 볼 생각을 하니, 찬바람에 스웨터를 꺼내 입은 듯 다정하고 반가웠다. 새로 온 책 친구들과 외로웠던 마음을 달래 보려고 한다. 읽은 사람도 쓰는 사람도 아이들처럼 적절한 관심과 애정이 필요한 듯하다. 동시에 할 수 없지만, 적당히 균형을 맞추며 잘 지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