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피는데 이유는 필요 없었다

용담꽃

by 무쌍

색으로 변해버린 화단 남은 것은 없어 보였다. 지만 꽃이 곤궁한 겨울인데도 화은 나를 자석처럼 끌어당겼다.

아침 해가 미끄러지듯 바닥을 덮으니, 화답을 하듯 꽃 말을 걸었다. 막 피어난 용담꽃이었다. 종처럼 생긴 용담꽃은 바닥에 납작 엎드려 피어 있었다. 한 송이씩 꽃과 마주 보며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꽃잎 칼날처럼 날카롭고, 잎도 끝이 뾰족하고 예리한 모양을 하고 있어서 일까? 용담꽃은 보기엔 매력적이지만 왠지 조심하게 되는 꽃이다. 실제로 만져보지는 않았지만 손을 대면 금방이라고 상처가 날듯 두려워지는 꽃이다. 꽃을 만나 반갑긴 한데,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비 하나 보이지 않는 화단에서 피었다고, 꽃이 어리석어 보였을까? 늦게 핀 용담꽃을 보니 답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금방 부끄러워졌다.


금 전까지 나는 하는 둥 마는 둥 하는 마음으로 도전을 하려고 했다. 막차를 겨우 탄 승객처럼 숨은 가빴지만, 손가방에 든 원고는 충분하지는 않았다. 약속 장소에 곧 도착해서 내밀 용기가 나지 않았다. 빈손은 아니었지만, 왠지 만족스러운 보상을 얻지 못할 것 같았다. 자신이 없었다. 결과를 미리 걱정하며 미루던 내 속마음을 게 되었다.


용담꽃(2021.11.28)@songyiflower인스타그램

꽃잎을 열자마자 종이 울리듯 신비롭고 영적인 힘으로 곤충들을 불러 모으고 있었다. 윙 날갯짓을 하는 등에 한 마리가 황홀경에 빠졌다. 관객은 달랑 등에 한마리 뿐이지만 꽃은 초라해하지 않았다.

꽃술은 힘껏 밖으로 밀어내 찾아온 등에가 어렵지 않게 꽃가루를 맛보게 하는 듯했다.

깊숙한 용담의 꽃자루는 처럼 하늘을 향해 소리를 낸다. 곧게 선 꽃은 깊은 곳까지 햇살이 들어오게 하며 달콤한 향기를 뿌리고 있었다. 보라와 파랑을 섞은 듯한 자주색은 깊은 바다에 사는 산호처럼 오래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자태가 우아하니 보는 나도 대접을 해줘야 할 듯했다. 무릎을 굽혀 작게 앉아서 사진을 찍었다. 꽃은 사진을 찍는 내 마음을 아는 듯 웬만한 바람에도 꿈적하지 않다. 아직 남은 기회를 그냥 흘려보내려던 날 다독였다.


꽃이 피는데 이유가 필요했던 건 아니었다. 한낮의 태양은 가을만큼 따사로웠고, 이미 여문 꽃봉오리는 그 빛이 충분해 보였다. 차가운 바람을 좋아하는 용담꽃은 늦은 것도 아니었고, 때를 못 맞춘 것도 아니었다.

실패가 두려워서 미루던 마음을 버리고, 시 완성할 수 있을 듯했다.

힘을 빼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용담꽃이 핀 화단은 점점 멀어졌지만, 지금 난 용담꽃 사진에 담고 온 이야기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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