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행복을 만들며 부산을 떤다

치유, 아직도 가야 할 길

by 무쌍

예고 없이 쿵쿵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놀랐다. 눈앞에 놓여있는 건 귤 박스였다. 박스에 쓰인 발송지 잘 아는 곳이었, 박스를 열었더니 온통 귤이었다. 굳어 버린 내 얼굴처럼 귤은 생기가 없고 바짝 말라 있었다. 래도 먼길을 온 귤을 모른 채 할 수 없어 하나씩 꺼내기 시작했다.

물품 내용엔 한라봉과 천혜향이라 쓰여있는데 정작 박스엔 감귤만 겨 있었다. 귤을 거의 다 꺼내 밑바닥 보일 때쯤 한라봉 4개와 천혜향 3개 찾았다. 귤은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 힘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도 내게 온 사연이 듣고 싶었다. 말을 걸어보려고 귤 하나를 골라 껍질을 벗겨 입에 넣었다. 맛을 잃어버린 귤은 막상 내게 할 말이 없어진 듯했다. 아무 말 못 하는 귤을 삼킬 수가 없었다.


모와 자식 관계가 바뀐 가정의 일원으로 았지만, 벗어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모르고 산 세월만큼 치유는 어려웠다. 상담가는 치유의 시간이 십 년 정도는 지나야 한다니 '시간은 약'이란 말에 기대를 걸고 있지만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된다. 어나려고 해도 끊어내려고 해도 발목을 붙잡듯 또다시 귤이 내게로 왔다.

아이러니하게도 모든 것을 잃고 나서야 인생을 보는 눈이 바뀌었다. 비참한 삶이지만, 선명하게 세상을 보는 안경을 쓴 기분이 들었다. 감정의 바다에서 빠져나온 듯 마음속 함정도 완전히 드러나 더 이상 구멍 같지 않았다. 주저하고 두려웠던 이유들은 모두 찾았으니 다시 걷고 싶어졌다. 그렇게 걷다 보니 어느새 밝은 세상 밖으로 나와 있었다. 제대로 볼 수 있게 되자, 생각도 변했다. 나 자신이 되어야 진정한 자유를 가질 수 있다는 것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치유를 위해 읽었던 책과 상담가들의 이야기 속에 규칙처럼 반복적인 패턴이 있다는 것에 소름 끼치듯 놀랐다. 그들도 처음엔 환자였다.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다가 같은 상처를 가진 사람들을 게 된 것이다. 그들은 대부분 예전에 나와 비슷한 가족에서 자란 희생양이었다. 몇몇 성공한 유명인사가 불후했던 과거를 이겨내고,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동화 같은 이야기들만 있는 줄 알았다. 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이 비슷비슷한 상처를 치유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가족이 존재하는 곳, 세상 어디든 숨겨진 불행은 있었고, 나만 아니라는 건 위로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잠깐이었다. 어떻게든 내 일상이 무너지는 것을 막아보려고 안간힘을 써야 한다. 그들이 그랬듯이 말이다.

나는 아직도 가야 할 길이 있다.


세상을 볼 줄 몰랐던 내가 마흔이 넘어서야 자각이란 안경을 썼다. 선명하게 볼 수 있다는 건 꼭 좋은 일만은 아니었다. 불평도 늘었고, 화도 참기 힘들어졌다. 그렇지만 그 감정에 이유는 분명했다. 나를 위한 불평들이었다. 예전 같았다면 업무회의 중에도 가족 전화를 먼저 받았던 나였다. 매번 급한 일인지 확인해야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실제로 급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위적으로 조작된 불안과 공포는 마음만 흔들었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는 침묵며 말 걸지 않았지, 나를 흔들려고 보내는 신호를 모두 차단할 수는 없었다. 귤 상자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예전으로 돌아와 가족의 평화를 수호해야 한다는 메시지였다. 그렇지만 나도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맛없는 귤이 알려주었다.


백일홍(2022.03.10)

며칠 전에 심은 백일홍 씨앗이 대부분 싹으로 올라왔다. 아이들도 함께 씨앗을 심었는데 이상하게 큰 아이 화분만 싹이 모두 올라왔다. 그래서 작은 아이 모르게 새 씨앗을 다시 심었다. 쩌면 싹이 올라올 때까지 씨앗 몰래 심기는 해야 하겠지만, 난 이런 일상이 너무도 흥미진진하다.


작년에 작은 아이가 길가에서 주워온 접시꽃 씨앗을 빈 화분에 심었다. 아이가 고집을 부려 그냥 두긴 했지만, 놀랍게도 접시꽃은 눈이 내리기 전에 작은 싹이 올라왔다. 나는 봄과 여름에 키워 꽃이 피는 한해살이를 주로 키우는데 접시꽃은 두해살이 꽃이다. 한 해는 꽃 없이 무성하게 잎과 줄기가 자라고 이듬해에 꽃이 핀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나무가 아닌 초본식물들을 잘 키우긴 쉽지 않다. 그래서 두해살이식물들은 잘 키우지 않았다. 그런데 아이가 심은 접시꽃은 별 탈 없이 겨울을 보냈다. 나는 엄두를 내지 않는 일을 아이는 실로 만들어 버렸다. 이제 아이가 만들어 놓은 접시꽃 모종을 꽃이 필 때까지 돌보는 건 나의 몫이 되었다.


겨울을 보내지 않으면 꽃이 피지 않는 접시꽃처럼 도 그랬던 것일까? 외로움으로 추웠지만, 삶에 대한 갈망은 더 간절해지기만 했다. 그래서인지 지바른 곳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은 늘 꽃으로 향한다.

접시꽃 (2022.03.10)

이 왔다. 봄나물이 겨울 내내 숨겨 두었던 향긋함을 내어주듯, 감춰둘게 많았던 내게 꺼내놔야 할 때가 왔다는 걸 재촉한다. 쓰지 않으려고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글쓰기는 영혼을 자유롭게 하며 나로 돌아가게 다. 처음엔 쓰는 것 말고는 나를 지킬 수 있는 것이 없어 보였지만, 사실은 을 쓰기 위해서 나를 잘 지켜야만 했다.

아직 만나지 못한 나에게로 까이 가고 있다. 일상은 그럭저럭 소동들이 계속되겠지만, 그래도 가야 할 길이.


백일홍 싹이 올라왔으니, 다른 씨앗들도 심어야 한다. 작은 행복을 계속 만들며 부산 떠는 일은, 작은 일에 휘청거리는 나를 지켜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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