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에 올라온 꽃들을 보느라 바쁜데, 벌써 살구나무가 분홍 꽃봉오리를 내밀었다. 매화는 이미 지고 있고 백목련과 자목련이 막상막하 꽃을 피운다. 진달래는 이제 어디서든 눈에 띄고 개나리도 색을 맞추듯 점점 노랗게 가지를 채우고 있다.
키 작은 야생화를 찍다 보면 산책 나온 개들을 피해 다녀야 한다. 피하고 싶지만 온갖 쓰레기와 개의 배설물들도 수없이 목격한다. 초봄엔 유독 새의 죽음을 많이 봤다. 꽃을 찾아다니면서 예쁜 꽃만 찍는 건 아니다. 생명이 있는 곳엔 보기 싫고 혐오스러운 것들도 함께 공존하기 때문이다. 그 험한 바닥에서 피어나는 꽃을 보면 세상이 쉬운 것은 없겠지 싶다.
요즘은 동네가 전부 꽃을 찍기 좋은 핫플레이스다. 꽃이 핀 나무마다 사람들을 몰려든다. 유독 봄에는 매화나 목련을 찍는 남자들이눈에 띈다. 그분들은 몇 번이고 찍은 사진을 확인하면서 꼼꼼하게 찍는다. 아까부터 한 할아버지가 매화꽃을 찍고 있었다. 금방 끝나지 않는 매화꽃 촬영을 기다리느라, 나는 바닥에 핀 민들레사진만 여러 번 찍었다.
할아버지가 다 찍고 가시나 싶어 매화나무 앞으로 갔다. 몇 장 찍고 돌아서니 할아버지는 내 뒤에서 기다리고 계셨다. 내가 나오자 다시 매화나무 아래로 가서 다시 꽃을 찍으셨다. 이맘때가 되면 조용히 꽃을 찍는 남자들을 자주 만난다. 그들은 정말 말이 없다. 내게 말을 걸었던 분들이 있었지만 꽃을 찍지 않았다. 그냥 꽃 이름이 궁금해 묻는 분들이었다.
꽃을 찍을 때 보통 말을 거는 건 할머니들이다. 젊은 여자나 나와 비슷한 중년의 여자는 절대 이유 없이 말을 걸지 않는다. 할머니들은 항상 비슷한 표정으로 궁금해하신다.
"거기 꽃이 있었네. 그 꽃 이름이 뭐예요?"
"산수유꽃이에요."
"아 열매 먹는 거구먼."
"네.........."
대답하고 가만히 있는 내게 할 말이 더 있는지 금방 자리를 뜨지 않으셨다. 꽃에 관해선 날씨처럼 초면에 나누기 좋은 이야깃거리지만, 낯선 분과 말이 길어지는 상황이 부담될까 봐 슬쩍 줄행랑을 친다.
나 역시 수다스럽긴 하지만 꽃을 찍는데 말을 걸어오면 당황할 때가 많다. 그래서일까. 산수유 앞에서 만난 할머니와 헤어지고 나니 남편 얼굴이 떠올라서 웃음이 났다. 남편에게 다짜고짜 말을 걸 땐 나도 비슷한 얼굴이 될지 모르겠다. 입이 근질거리는 걸 참는 것이내겐 쉬운 일이 아니다. 다행히 글을 쓰며 수다의 대부분을 쏟아내는 듯했지만 남편은 여전히 내가 말이 많다고 한다.
나는 할 말이 늘 준비된 사람 같다. 꽃을 찍다가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그 '할 말'때문인 듯싶다. 예쁘게 핀 꽃 앞에서 그 노고를 기뻐하는 마음은 축하해야 하는 일인 듯 요란스럽다. 눈앞에 핀 꽃이 마치 나를 위해서 피어난 듯 설렌다. 엄마가 되어보니 꽃송이 하나하나는 내 아이를 보는 듯 소중해지기 까지 했다. 그래서 꽃에 관해선 수다가 계속 멈추지 않는 듯싶다.
산책길에 만난 제비꽃은 보도블록 틈에 무리 지어 피었다. 딱 알맞게 핀 제비꽃을 찍기 시작했다. 아직 반도 못 찍었는데, 남편은 저만치 가다가 더는 못 참겠는지 날 부르며 호소를 한다.
"가자! 그만 좀 찍어."
다시 못 볼 제비꽃이 아쉽지만 남편을 따라갔다. 그런데 남편은 아직 덜 핀 살구나무 꽃봉오리가 곱다며 왜 안 찍냐고 묻는다. 손사래를 하며 "내 눈엔 별로야"라고 휙 돌아섰지만 사실 속내는 아니었다. 그 길 위에 꽃들은 원하는 만큼 다 찍고 지나려면 남편이 감당 못할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가족의 평화를 위해선 나 혼자 꽃을 보러 다녀야 한다. 그래도 봄을 함께 즐기는 건 가족과 함께인 게 더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