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은 작다. 웬만한종류의 장갑은 뭐든 끼면 내 손이 아이손처럼 작아진다. 고무장갑은 성인용 작은 사이즈는 좀 크고, 어린이용 장갑은 불편하다. 헐거운 고무장갑 안에 면장갑을 끼고 겹쳐 쓰기도 했지만, 간단한 설거지는 그냥 맨손으로 해버린다. 겨울 보온용 장갑도 아동용은 손목이 보이고, 성인용 작은 사이즈는 손가락 끝에 공간이 남는다.차라리 벙어리장갑이 오히려 더 편하다.
작은 손이라는 건 장갑 낄 때만 문제인 줄 알았는데, 결혼하고 나서 생각지 못한 문제가 생겼다. 요리를 하는 손, 물건을 사는 손이 남편의 기준에 비해 많이 작았다. 남편은 세일하던 안 하던 서너 개를 사는데, 나는 두 개가 최고다. 그나마 아이들이 있으니 가족수만큼은 물건을 사긴 한다. 나에겐 물건을 쌓아두고 쓰는 일은 좀처럼 없다.
음식도 넉넉하게 만드는 건 익숙지 않았다. 혼자 지낸 지 오래여서 그런가? 요리에 자신이 없어 그런가? 1인용을 2인용으로 바꾸는 것은 그래도 어렵지 않았다. 라면은 두배로 만들면 되는데, 모든 요리가 라면 같지 않아서 문제였다.
국을 넉넉히 끓인다고 하지만, 늘 한 끼를 먹으면 끝이 났다. 라면은 모자라지 않는데, 국수면은 늘 모자라 다시 삶아 내야 했다. 한 번은 설날 떡국을 끊였는데, 명절이라 아버님 몫까지 끊였는데도, 모자라서 난 떡국을 못 먹었다. 얼마 전엔 카레를 했는데, 어쩌다 보니 아이들은 몇 끼니를 먹였는데, 나는 카레를 한번 먹고 끝났다.
매번 모자란 듯 음식을 차리니 아이들은 식사를 하다가 꼭 묻는다. "엄마 더 있어요?" 하지만 늘 접시에 올려진 양이 다였다. 어쩌다 음식이 남는다 싶은 날은 안타깝게도 정말 요리가 맛이 없는 경우다.
음식 하는 손이 작다 보니, 음식물 쓰레기는 덜 나오지만, 손이 크고 요리 솜씨 좋은 엄마가 되는 일은 내 인생에 없을 것 같다.
그래도 손이 작은 건 아이 이유식을 만들 때는 도움이 되었다. 오히려 작은 양은 내게 어렵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아이들도 크고 나도 주부 경력이 두 자릿수가 되었지만, 아직도 요리가 서툴고, 음식은 여전히 모자란다.
물건 사는 손은 작지만, 네 식구 살림은 그런대로 굴러간다. 아직도 내 손에 맞는 고무장갑은 없지만, 그나마 고체형 설거지 비누를 쓰니 손은 덜 거칠어진 듯했다.
동짓날이라고 팥죽을 끊였다. 예전에 유명한 팥죽집에서 한참을 기다려 먹은 죽은 정말 눈물이 날 정도로 허전했다. 잘한다는 죽집은 늘 양이 작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남편이 거든다고 해서 새알심 만들기를 넘겼다. 찹쌀 반죽이 작다고 구시렁구시렁하더니, 다 만들고 나선 또 많다고 허허 웃었다. 동짓날 만든 동지팥죽은 평소 끊인 국보다 넉넉했다. 그리고 남편이 팥죽을 먹다 말고 "팥죽 내일 아침에 먹을 것도 있어?"라고 묻는다.
다행히 이번 동지팥죽은 많이 남았다. 동짓날이 지나도 맛있는 팥죽을 며칠 더 먹을 수 있다.
사실 '죽을 쑨다'는 의미는 요리가 아닌 경우 좋은 뜻으로 쓰진 않지만, 나는 죽을 잘 쑤는 편일지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