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 세일엔 눈이 커진다. 특히 고기류는 더욱더 그렇다. 음식을 못해도 고기반찬은 그런대로 가족들이 반겨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며칠 전에 사 온 고기가 여전히 냉장고에만 있다. 추워서 바깥출입을 하지 않는 것처럼, 가족들의 입맛들도 가만히 있으면 좋겠다.
"불고기 볶음 먹을래?" 대답이 없다.
"그냥 구워줄까?" 역시 그랬다.
집밥 하느라 계속 바빴지만 세일해서 들고 온 돼지고기 앞다리살은 냉동실로 옮겨질 때가 되어 버렸다. 요리라면 자신 없는 내가 의기소침해진 건지, 주인 잘못 만난 고기가 불쌍해 보일 지경이었다. 선택받지 못한 고기는 김치찌개를 끓일까 싶었는데, 마지막 질문에 대답이 왔다.
"제육덮밥 해줘. 계란 프라이 얹어서 말이야."
겨우 희망을 찾은 고기는 소주를 콸콸 붓고 프라이팬에 구워졌다. 굽는 동안 양념을 준비해서 야채들과 볶아냈다. 제육볶음이 완성되는데, 맛을 보니 지난번과 또 다른 맛이다. 고기 중량에 맞춰서 양념 비율을 맞추는데, 매번 할 때마다 맛이 달라졌다.
'이래서 양념을 사다가 만들어 먹어야 해.' 소리가 나왔다가도 다시 맛을 보며 '이 정도면 먹을만하네.' 하며 참기름을 두르고 마무리했다. 내 요리도 언젠가는 자존감이 올라갈 순간이 있을 거라 어렴풋이 기대했다.
가족들이 등장할 시간이 되었다. 이제부터는 좀 뻔뻔해져야 한다. 가장 먼저 남편이 한입 먹고 한소리를 할 것이고, 아이도 음식 맛보는 건 너무도 솔직하기 때문이다. 어떤 말이 나와도 대답할 핑계가 준비되어 있었다. 그리고 만에 하나 혹시라도 맛이 좋다고 하면 또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가족 수만큼 덮밥 위에 계란 프라이를 얹었고, 맛 품평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또 똑같은 대답이다.
"다음에도 똑같은 맛이 날까? 맛있네."였다. 만든 내가 잘 알고 있으면서 꼭 가족들이 이 말을 해야 정신이 든다. 언제쯤 나도 한결같은 맛을 내는 장인이 되려나.
한결같이 너그러운 엄마이고 싶다. 아이들의 실수에도 엄마 품에서 힘을 얻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막상 현실은 이랬다 저랬다 하는 엄마가 되었지만, 엄마가 언제나 내편이길 바라는 아이들의 마음을 잘 안다. 설거지를 도와준다고 그릇을 만지는 손을 보며 불안했지만, 그릇이 깨져도 아이 편을 들어주고 싶었다. 그릇을 주로 깨뜨리는 내게 아이는 "엄마 괜찮아? "라고 먼저 말을 해주기 때문이다. 엄마가 되면 배우는 것도 많다는 건 나에게 긍정적이었다. 모든 잘못을 내 탓으로만 돌리는 버릇을 고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한결같이 너그러운 엄마 되고 싶다는 건, 반대로 엄마인 나를 너그럽게 봐주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할 때마다 달라지는 제육덮밥 맛을 매번 이해해주길 바랬던 것처럼 말이다. 손이 작아도, 솜씨가 좀 엉성해도 나는 가족을 위한 밥상을 매일 차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