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진정제, 내게 내미는 크리스마스 선물
행운의 네잎클로버
입을 꾹 다물었다. 갈 곳이 있었지만, 침묵을 결정하고 걷기 시작했다. 꽃이 있는 계절엔 달라진 식물을 발견하려다 보니, 산책은 잊어버리기 쉽다. 길을 따라 쭈욱 걷는 기분은 들지 않고, 산책 나온 강아지가 이리저리 킁킁거리듯 나도 길가를 이쪽저쪽 두리번거렸다. 그래서일까? 다른 계절보다 겨울 산책은 한눈을 팔지 않고 발이 가는 대로 집중할 수 있다.
새로움은 거의 없고, 땅 위는 납작해져 어둡고 무거운 색으로 변해버렸다. 뭉게구름 같던 나무들은 날카로운 선만 남았고, 울창했던 화단은 지면을 드러내며 밋밋해졌다.
산책하는 길 위에 풍경은 차분해졌는데, 내 머릿속은 정 반대로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여러 생각들이 기다렸다는 듯 한꺼번에 싹이 나 버렸다. 한번 올라온 새싹은 자라기만 하고 작아지지 않았다. 솟아 오른 생각이 불러온 감정들은 가지만 남은 나뭇가지처럼 날카롭고 예민하게 갈래갈래 뻗으며 나를 괴롭혔다.
머릿속이 시끄러우니 침묵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말없이 걷다 보니 본능적으로 같은 장소에 도착했다. 큰 모과나무와 산수유나무가 있는 긴 화단엔 제법 큰 토끼풀 군락지가 있다.
얼마 전 눈이 소복했었지만 토끼풀 절반은 얼지 않고 아직 남아 있었다. 지난번에 왔을 때 보단 시들해졌지만, 내겐 그곳이 내미는 야생의 초록 자연이 제법 괜찮은 위로였다. 깨진 벽돌 바닥을 촘촘하게 덮은 토끼풀 잎에 손바닥을 올려서, 새로운 피를 수혈받듯 초록빛 기운을 얻었다. 자연에 내 몸을 맡겨보고 싶을 정도로 손바닥은 자유로움을 빨아들였다. 손바닥을 통해 내 몸에 끝도 없이 펼쳐진 자연의 신호가 전해진다고 믿었다. 초록의 힘이 온몸에 퍼지며, 개운함이 머리까지 올라가 맑아지길 기다렸다.
그런데 이번엔 자연이 선물을 하나 더 내밀었다. 겨울바람에 잔뜩 오므린 토끼풀 잎들 중에 유독 다른 잎이 눈에 보였다. 네 잎 클로버였다. 보통은 사진으로 담기만 하지만, 오늘만큼은 욕심이 났다. 크리스마스가 코앞이라 그런지, 그곳이 내미는 한정판 선물을 그냥 받고 싶었다. 오래전에 어른이 되었지만, 운이 좋아서 아이들보다 먼저 크리스마스 선물이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