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감정으로부터 독립

스스로 결정하는 삶

by 무쌍

감정을 글로 쓰기 시작했다. 어쩌지 못하고 호주머니에 넣어둔 감정은 쌓인 채 쓰레기처럼 느껴졌다. 점점 내 어깨를 쳐지게 하고, 걸음걸이도 무겁게 바꿔 버렸다. 타인과 나 사이에 분쟁이 일어나는 것 자체를 싫어했다. 스스로 들여다보지 않고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만 받아들였다. 공감능력을 최대한 넓게 펼치고 타인을 이해하면 될 일 았다.


가라앉은 흙탕물처럼 고요하고 싶었다. 누군가가 잠시 미꾸라지처럼 요란하게 소란을 피우더라도 차분하게 중재하면 탁했던 물이 깨끗해질 테니까 말이다. 가족들 사이에서도 늘 역할은 중재자를 자처했다. 내 속내는 가능한 한 빨리 고요한 수면을 만들어야 한다는 이유였다. 그런대로 맑은 날 흐린 날도 그럭저럭 살아온 것도 사실이었다.


포기하지 않으면 잔잔한 물에 수련꽃처럼 꽃이 필 것이라고 말이다. 깊은 물을 들여다보면 투명하다기 보단 검게 보이듯, 내 속이 훤히 보여 타인이 알아차리면 안 좋을 것 같았다. 어느 날 고인물이 썩었는지, 흙탕물이 뿌연 채 멈춰 버렸다. 연못 전체가 완전히 탁해져서 예전처럼 고요해질 것 같지 않았다.

과묵하게 적당히 감추고 모른 척 덮어두던 감정들 싫어졌다. 고인물은 새로운 변화를 맞이 했다. 인생에 큰 폭우를 만난 후 큰 강으로 이어지는 물줄기 생겼다. 더 이상 연못에 남고 싶지 않았다. 가까스로 강물로 이어지는 물길을 따라갔다. 나는 깨끗한 물이 되고 싶었지만, 버리고 싶은 부정적인 감정은 마치 섞인 모래와 흙과 돌멩이들처럼 느껴졌다. 흘러가는 물에 몸을 맡기면 아무것도 품을 수가 없었다. 익숙한 것들을 하나씩 버리는 작업은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가장 가볍게 흘러가고 싶었지만 멈칫거리는 마음은 쉽게 벗어나지 못했다.


흐르는 물처럼 떠밀려 가듯 글을 썼다. 감정들은 쏟아지는 물처럼 나를 더 멀리 보내주었다. 여행지에 생경한 풍경을 보며 얻는 교훈처럼 내 인생을 낯선 시선으로 보게 했다.

완전히 혼자가 되었다고 느끼는 순간을 기다렸다. 가족으로부터 타인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기에 적당한 때를 찾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휘둘리지 않기 위해선 나 자신을 과거보다 더 업그레이드시켜줄 성공의 기회를 찾아야 한다고 믿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따로 있었는데, 눈치 채지 못했다. 모든 것은 글을 쓰고 나서 보이기 시작했다. 적당한 단어를 찾아 글로 표현되는 감정들은 보이지 않는 걸 보게 만들었다.

누구도 보여줄 필요 없는 일기장처럼 꼬박꼬박 써 내려가는 노트가 쌓여갔다. 다시 노트를 펼치고 읽었을 때, 강물에 떠밀려 내가 너무 멀리 와버린 기분을 느꼈다. 뒤늦게 알게 되었지만, 밀린 일기를 몰아쓰듯 채운 글은 이미 내가 독립을 했다는 증거였다. 글쓰기는 과거로부터 대물림된 감정들을 확인할 기회를 주었다.

모든 것은 내가 갖고 있었다. 이미 내가 독립한 존재라는 분명한 이유를 은 듯했다.


첫째, 과거는 이미 흘러간 뒤라는 것이다. 불행한 과거로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확실한 위로였다. 과거가 불행이 아니라 최고의 파라다이스였다고 해도 그 시절은 다시 돌아갈 수 없다. 흘러간 물을 다시 거슬러 갈 수 없듯이 말이다. 나는 이미 과거로부터 멀어졌다. 결코 되돌아갈 수 없다는 걸 너무도 잘 안다.

둘째, 물 위에 둥둥 떠내려가는 배에 앉아보니, 누구도 나를 대신할 수 없었다. 두려움이 몰려와도 쓰러질 것 같아도, 누구도 나를 책임 지지 못했다. 자존감은 스스로 끌어올려야 하는 것이었다. 내 의지대로 잔잔한 풍경을 감상하거나, 배를 멈춰 쉬어도 되었다. 나만 잘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잘 지내야 했다.


새해가 시작되고 다시 원점이다. 내 글쓰기도 시작이다. 버리지 못한 감정들을 호주머니에서 꺼냈더니, 몸은 다시 좀 가벼워진 듯했다. 앞으로 빈 호주머니엔 어설프게 쓴 원고를 넣어두며 고치고 고쳐쓸 생각이다. 고쳐 쓸수록 글쓰기는 불편한 감정을 버리는 방법으로 쓸모 있었다.

삶은 더 알 수 없는 미래로 가는 중이다. 갈길이 먼듯하고 이미 늦은 시작이다. 또 맞닥뜨려야 할 미래가 뭔지 모르고, 처음으로 되돌아온 듯 '이런 걸 원했나?'싶기도 했지만 다행스러웠다. 스스로 결정하는 삶을 얼마나 내가 원했는지, 감정을 쓰다 보니 더 선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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