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상선에 냉장 보관되었던 글쓰기 2

갑상선 기능 저하증이 만들어 낸 멈춤

by 무쌍

글을 쓰기 시작하고 내 병에 대해선 쓰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글을 쓰면서 작게 쪼개지는 존재의 단상들이 더 매력적이라고 느껴졌다. 수많은 작가들이 암 투병을 하면서도 써낸 글들은 건강하고 더 생명력이 넘치는 이유가 그러한 것이 아닐까 싶다. 수잔 손택은 <은유로의 질병>서 지적한 대로, 질병이 있다는 것은 낙인처럼, 타인도 스스로도 경계를 그어 버리게 되기도 한다.

도 갑상선 기능 저하증 판정을 받고, 평생 약을 먹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 드리기 싫었고, 내 삶의 열정들은 모두 차갑게 냉동 보관해두었다. 다시 예전처럼 일을 하면 분명 더 악화될 것이고, 영영 돌아오지 못할 것 만 같았다. 그래서 버리지는 않았지만 하고 싶던 일들은 꺼내보지도 않았다.


봉화산의 첫눈 2020.12

그날 외근을 나갔다가 지하철 입구 계단 앞에서 울었다. 갑자기 수없이 많은 계단을 내려갈 엄두가 나지 않았고, 몸이 부서질 듯 아팠다. 회사에 전화하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난 한 달 무게는 갑자기 늘었고, 목젖 부근이 툭 튀어나와있었다. 언제 이렇게 불룩해진 건지 알 수 없었다.


이비인후과에서 검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곧 전화가 울렸다. 의사는 다급한 목소리로 지금 바로 진료의뢰서를 팩스 송부해줄 테니 가까운 대형병원을 말해달라고 했다. 상태가 너무 안 좋으니 보호자와 병원으로 가보라고 했다. 병원 외래진료가 거의 끝나는 시간이었지만 응급으로 검사를 마치고 대기실에서 울고 있었다. 눈물은 계속 쏟아졌다. 앉아있는 것도 힘이 부쳐 눈이 감기기 시작했다.


퉁퉁 부은 눈과 볼록 튀어나온 목은 가릴 수 없었다. 의사의 첫마디 " 이 정도면 거의 실신상태인데, 걸을 수 있었어요?"

"많이 피곤하시죠?"


이제야 말이 통하는 사람을 만난 기분이었다.


"네 맞아요. 너무 피곤하고 졸리네요."


"우선 일주일치 약을 드릴 테니, 드셔 보시고 약이 듣는지 살펴볼게요. 일주일 정도 드시면 아침에 일어나는 일이 좀 다르다고 느낄 겁니다. 대신에 무조건 쉬셔야 합니다."


"저 직장은.."


"일은 지금 당장 멈추세요. 휴직을 길게 하셔야 할 겁니다. 6개월 정도 지켜볼게요. 목이 이미 많이 부어 있네요. 초음파 검사도 해야 합니다. 약을 드시면 확실히 나아지실 거예요. 이대로는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없어요. "


사 말대로 약을 먹고 일주일 만에 아침시간에 눈이 저절로 떠졌다. 그러고 나서 초음파 검사를 했지만 결절은 없어 다행이라고 의사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좋아하는 작가 중 올리버 색스(Oliver Sacks)는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도 흥미로웠지만 의사를 하는 동안 있던 일들과 자신의 생애를 잔잔하게 쓴 세이집 <모든 것이 그 자리에> 기억에 남는다. 의 글을 읽기 시작하면 멈출 수가 없 진솔함과 위트가 느껴지는 할아버지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다. 책 속에는 갑상선 기능 저하증 환자에 대한 에피소드가 있다.

책 속에서 갑상선 기능 저하증(Hypothyroid)은 그의 말을 빌려 설명하자면 "갑상샘은 우리 몸을 덥히는 난로 같은데, 난로가 고장 나 살아있지 않은 냉장보관 상태에 머물 수밖에 없다."


"좀 서늘하고 좀 나른하고 기력이 없는 그런 느낌이에요. 그는 7년간 외출한 상태로 가족들은 그를 차갑게 방치함으로써 생명을 살렸고, 우리는 그에게 온기를 불어넣으면서 결과적으로 죽음으로 몰고 갔다. 급성 암도 무려 7년간 냉장 보관된 것이다.


그 환자는 자신의 갑상선에 문제가 있는 줄도 모르고 오랜 기간 무기력하게 지냈다. 하지만 갑상선은 급성 암이 몸에서 자라는 것조차 무기력하게 만들어 논다는 것을 아무도 알지 못했다. 갑상선이 재 기능을 하자 몸에 숨겨져 있던 다른 암세포 때문에 죽음에 이른 것이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나는 한동안 알 수 없는 충격을 받았다.



갑상선 저하증으로 병원을 다니기 시작하고 달라진 것들은 많다. 주요 증상이 무기력증이기 때문에 내 몸은 완전히 멈춘 일시정지가 되었다. 잠을 자고 일어나도 개운하기는커녕 잠자리 들기 전과 똑같이 졸리고 피곤하다. 약을 먹고 나서 4년 정도 되었을 때 이유 없이 우는 일은 사라졌다. 그리고 아이를 낳고 싶었다.


의사는 문제없다며, 나에게 용기를 주었다. 약을 끊고, 매달 호르몬 검사를 해야 했지만, 출산까지 무사히 하게 되었다. 직장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은 포기했지만 엄마는 될 수 있었다.


그리고, 갑상선이 망가지면서 냉장 보관된 나의 열정을 하나씩 꺼내기 시작했다. 작가라는 직업을 흠모했던 나, 그리고 글을 쓰고 싶었던 나를 다시 만났다. 여전히 약을 먹지만, 내 글은 나에게 거침없이 흘러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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