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써놓은 글을 찾고 싶었다. 그 글을 쓴 계절과 장소는 떠올랐지만, 어느 노트에 남아 있는지 찾을 길이 없었다. 내 노트에는 낙서처럼 잡동사니들이 쓰여 있지만 나에겐 소중한 보물이다. 꼭 나중에 글로 쓸 재료가 될 거라는 소박한 소유욕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노트에 채워진 것들은 여러 가지로 쓰인다. 스크랩들도 언젠가 나의 소설에서 쓰일 것이니 어느 하나 함부로 할 수 없다. (물론 내 희망사항이지 말 말이다.) 게다가 여기저기 빈 노트를 두고서 손에 잡히는 대로 쓰기 때문에 낙서장이나 다름없다. 대신 노트 앞에 쓰기 시작한 날짜와 다 쓴 날짜는 적어둔다. 노트를 정리할 엄두가 나지 않고, 노트를 쓰는 방식을 바꾸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보통은 아무리 낙서라도 금방 찾는데 이상하게 찾을 수 없었다.
얼마나 뒤졌을까. 결국 찾지 못했다.
더 뒤져볼 곳이 없는데, 책장 위에 결혼 전에 갖고 왔던 2개의 박스가 보였다. 그 안에는 사진, 스크랩, 다이어리, 노트들이 있었다. 완전히 밀봉한 채 열어 보지 않아서 잘 기억나지 않을 정도였다. 상자를 여는 순간, 염색머리를 한 여자아이 사진이 보인다. 밝은 갈색에 탈색이 된 단발머리가 나였다니 신기했다. 오래전 쓰던 다이어리는 연도 별로 묶어져 있었다. 그리고 말라버린 스티커 묶음과 편지지, 녹아버린 플라스틱 열쇠고리, 뜯지도 않은 다이어리 속지, 수성펜은 새것이지만 잉크는 다 흘러나와 있었다.
어이없게도 아껴놓았던 보물상자가 쓰레기가 되어 가고 있었다. 언젠가 필요할 것이라고 남겨두거나, 새 것 그대로 담아 두기만 한 것이다.
상자 안에 노트는 모두 새것이었다. 그나마 쓸 수 있는 노트를 찾았으니 다행이긴 했다. 결국 물건들은 거의 다 버려야 했다. 두 개의 상자는 쓰레기봉투 하나를 채웠고, 더러는 재활용 분리수거 함으로 갔다. 빈 박스 두 개만 덜렁 남았다. 빈 박스를 무슨 용도로 쓸까 궁리했지만, 그 빈 박스 마저 버렸다.
미니멀 라이프나 버리기에 대한 책들을 읽었지만, 나는 물건을 버리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내가 남겨둔 것들은 다 의미가 있는 것이고, 쓰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내가 갖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살았다는 것이 더 충격이었다.
결국 노트도 찾지 못했고, 쓰레기 정리만 했다. 한바탕 소동이 끝나자 찾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써놓긴 했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사라진 것을 찾아내는 것보다는, 새로운 것을 찾는 편이 빠르겠다 싶었다. 기억이 나는 대로 떠오르는 것을 노트에 쓰기 시작했다. 다행히 노트 몇 장이 채워졌다.
가족들과 지내다 보면 내 공간은 따로 만들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아무 곳에서나 책을 읽고 글을 쓰게 되었다. 아무래도 좋았다, 장소가 중요하지 않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책상을 아이들과 같이 쓰거나, 식탁에서 글을 쓰다가도 엄마 노릇을 해야 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김미경 강사는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 책을 읽고 글을 썼다고 했다. 워킹맘으로 그녀의 노력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알 수 있었지만 더 인상적인 것은 따로 있었다.
"제가 강사가 되려고 했을 때, 가장 먼저 한 게 뭔 줄 아세요? 모르니까 공부를 해야 하잖아요. 책을 읽어야 했어요."
그런데 공부를 위해서 가장 먼저 산 건 책이 아니었다. 빈 책장을 먼저 사놓고, 공부한 책을 차근차근 책장에 꽂았다고 했다. 책장이 다 차니까 또 책장을 하나 더 샀고, 지금에 자신을 만든 책장이 되었다고 했다. 내가 생각한 시작과 그녀의 시작이 달랐다.
내가 글을 쓰고 싶다고 했을 때 먼저, 남편은 먼저 블로그를 만들라고 했었다. 나는 블로그에 올릴 글 먼저 써놓아야 한다고만 했다. 하지만 남편이 말이 맞았다. 글을 쓰고 싶다면 채울 공간을 먼저 만들어야 했다. 다행히 브런치 작가가 되었고, 그래서 쓰게 되었다.
이젠 비우는 것과 채우는 것에 대한 생각을 바꿔야 한다. 앞으로 채우는 것이 수집인지, 쓰임인지 말이다. 올해가 가기 전에 갖고 있는 것에 대한 대대적인 쓸모를 알아보기로 했다.
나무는 다음 봄을 위해서나뭇잎을 떨구고, 가지만 남겨둔다. 혹한을 견디려면 최소의 것만 남기고 비워내야 하는 것이다. 낙엽이 진 나무는 잎과 꽃이 될 겨울 눈을 미리 만들어 놓는다.
책장을 비워서 내 노트들을 꽂아 둘 자리를 정해야겠다. 겨울같이 혹독하고 쓸쓸한 글쓰기 시간이 지나, 그것들이 피어날 봄이 오면 시가 될지 소설이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