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피면 위험해진다

하늘매발톱 꽃

by 무쌍

만날 수 없었다. 골목길을 잘 못 찾은 건가 싶었다. 지난주 도서관 가는 길에 보기 드문 야생화를 났다. 아스팔트와 담벼락 맞닿는 틈을 화분 삼아 애기똥풀이 무리 지어 자라고 있었는데, 반질반질한 잎 세 갈래로 나뉘어 귀여운 레이스 모양을 한 다른 풀포기가 있었다. 초록잎을 뭉게구름처럼 띄운 채 겹이 우아한 꽃잎이 보였다. 가까이 가보니 하늘매발톱 꽃이었다.

꽃받침을 보면 매의 발톱을 닮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으로 꽃잎 색이 푸른 하늘빛이라 하늘을 붙인 듯 하지만 원래 높은 산과 같은 고산지대에 자라 하늘이라 붙었다. 모양도 이름도 독특해서 이 꽃을 알고 금방 기억할 수 있었다.

에 피는 야생화로 의 발을 닮았으니 신비하고 별한 꽃은 맞는 듯싶다. 금은 원예종으로 계량되어 정원에도 많이 심어진다. 꽃이 워낙 예쁘고 여러해살이풀이라 애호가들이 화분이나 화단에 심어 키우긴 해도 아스팔트를 화분 삼아 자라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도시의 야생화가 된 매발톱꽃은 더욱더 특별했다.

이 핀 곳은 큰 빌라촌을 에워싼 담장을 따라 난 골목이라 고즈넉한 곳이긴 했다. 하지만 언제든 차가 드나들고 사람들에게 밟힐 수 있는 곳에 아슬아슬하게 핀 모습이 영 마음에 쓰였다.

마주 앉아 사진을 찍으며 보니 제법 오랫동안 그 자리를 지킨 듯했다. 꽃봉오리가 열개 남짓 달려 있었고 이미 두 송이는 활짝 피어 있었다. 울이면 뿌리만 남았을 이 꽃이 언제부터 자리를 잡고 있던 것일까 궁금했다. 새로 꽃 친구가 꽃다발처럼 피어나면, 또 만나 수다를 떨 생각에 신이 났다.


일주일 만에 찾아간 골목길엔 안내등처럼 노란 애기똥풀 꽃이 피어 있었다. 노란 꽃은 등처럼 긴 줄기를 세우고 나를 맞아주었고, 하늘매발톱 꽃이 얼마나 피었을지 궁금했다. 이상했다. 분명 꽃다발처럼 핀 모습을 기대했는데, 노란 꽃 말고는 보이지 않았다. 가까울수록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단단히 뿌리를 내린 매발톱은 더덕 뿌리만큼 굵은 단면이 잘린 채 꽃과 잎은 온데 간데없었다. 다른 뿌리에 달려 있는 건 시든 꽃 한 송이와 세차게 당긴 듯 뜯긴 이파리였다. 수난을 당한 매발톱이 닥 위에 쓰러진 채 울고 있었다.

꽃은 시들기 마련이지만 이렇게 훼손되어 있는 걸 목격하는 일은 불쾌한 일이다. 몹쓸 짓을 한 누군가가 방금 다녀간 듯 서늘한 기분이 들었다. 잎이 떼어진 줄기가 바닥에 쓰러지고 잘린 잎이 주변에 보이지 않는 걸 보니 들고 일부러 한 짓으로 보였다. 올봄엔 별일 없어 다행이다 싶었는데, 또 꽃이 사라졌다. 머릿속에선 누가? 왜? 그랬는지 생각하고 싶었지만 그만두어야 했다.

그래도 뿌리까지 완전히 뽑아내지 않았으니 기회가 있을 듯싶었다. 모질게 뜯은 손은 왜 그런 건지 묻고 싶지만, 이럴 땐 하늘매발톱이 지지 않기를 바라는 것 밖에 할 수 없다. 골목을 어서 벗어나 실망한 마음을 달래고 싶었다.


이 얼마나 피었을 까 궁금했는데, 이 광경을 보고 돌아설려니 터벅터벅 발걸음마저 심술이 났다. 그래도 꽃이 많은 계절이라 곧 겹벚꽃나무의 분홍 꽃잎에 마음이 달래 졌다. 잠시 후 내게 위로하듯 꽃이 다가왔다. 비비추 잎이 초록으로 뒤덮은 화단에 하늘매발톱 꽃과 비슷한 색을 한 야생화가 바람에 살랑거리며 나를 불렀다.

자주괴불주머니였다. 어느새 손은 탐스럽게 핀 꽃 사진을 찍느라 바빠졌다. 그러다 또 걱정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약초로 알려진 자주괴불주머니도 사라질지 모른다. 전에 중랑천 군락지에서 뿌리째 뽑아가는 걸 본 적 있다. 종종 중랑천이나 공원에서 쑥이나 원추리의 새순을 뜯는 사람들을 본 적 있는데, 게다가 민들레만 골라 뜯는 손도 있었다. 약에 쓰렸는지 식용을 하려는지 나물을 채취하는 일 같지만 나서서 말릴 용기는 없었다.

그냥 풀포기였던 야생초가 꽃이 피면 무엇인지 분명히 알아볼 수 있다. 산야초라 불리는 생초를 채취할 때 잎보다는 대부분 꽃으로 확인하기 때문이다. 꽃이 예뻐서 꺾어가든 잡초처럼 뽑아내든 꽃이 피면 위험해지는 건 피할 수 없는 듯하다. 그래도 하늘매발톱이 다시 힘을 내주길 바라본다.

자주괴불주머니(@songyiflower인스타그램)

꽃을 찍을 땐 마지막일지 모른다는 걸 염두에 두어야 한다. 특히 길가의 꽃이라면 더욱더 미련을 두지 말아야 한다는 걸 또 잊고 있었다.

처음 그 꽃은 만날 수 없었다. 꽃이 사라진 소동에 마음이 착잡했지만, 지금 활짝 피어 반짝이는 시간이라고 새로 만난 꽃이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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