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비 덕분에 촉촉해졌다

벚꽃엔딩

by 무쌍

작이 있으면 끝도 정해져 있다지만 이번에도 섭섭했다. 꽃나무는 꽃이 핀 순서대로 꽃잎을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한꺼번에 물결치듯 온 동네가 우아한 소란이 벌어지고 있다. 축포는 소리 없이 마구마구 터지고 있었다. 꽃잎 축포는 벚꽃에 눈을 떼지 못하는 아름다운 사람들에게만 들리나 보다. 고개를 든 사람들 위로 더 많이 뿌려주는 듯했다.

교하던 아이와 나도 그 틈에 함께 서 있었다. 벚꽃나무가 허공으로 뿌리는 꽃잎을 잡고 싶었다. 내리는 빗방울처럼 가만히 손을 내밀면 꽃잎이 떨어질까 싶었다. 아지는 꽃잎은 아이손만 피하는 듯 히지 않아 아이는 섭섭해했다. 바닥에 떨어진 꽃잎이라도 잡으려고 했지만, 얇은 잎은 잡으려면 더 멀리 도망가듯 바람이 휙 보내버렸다.

아이도 나도 그냥 떨어지는 꽃잎을 보기로 했다. 그러다 아이 머리 위에 걸린 잎을 잡아보려는데 놓쳐버렸다. 바람이 주자창 구석으로 꽃잎들을 쓸어갔다. 작은 회오리 바람이 빙그르르 만드는 소용돌이는 연분홍 꽃잎을 더 많이 쌓아 올렸다. 가만히 바람이 부는 대로 꽃잎이 하는 말을 듣고 싶었다.


아직 만나지 못한 인연이라도 있는 걸까? 벚꽃이 필 무렵 새찬 봄비가 야속하게 꽃잎을 다 떨어지게 한다고 늘 원망했었는데 봄비는 올 생각이 없다. 바짝 마른하늘 때문인지 금방 핀 꽃들도 힘없이 시들했다. 벚꽃이 지기 전에 봄비를 만났으면 싶었다. 이는 뭔가 눈치챘는지 나를 안심시켰다.


"엄마 내년에 또 피어 걱정 마."

다음 봄에 다시 피는 걸 잘 아는 아이가 해준 말이 고마웠다. 향기 나는 라일락이 피기 시작했지만, 꽃비가 쏟아지던 오늘은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벚꽃 (2022.04.11)

그런데 뭔가 두고 온 듯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민들레가 잔뜩 핀 화단을 발견서 아이와 가보려고 했는데, 벚꽃엔딩 소란에 까맣게 잊어버렸다. 여름 태양이 벌써 왔는지 더운 날씨에 아이와 난 약속한 듯 그늘진 길로 걸었다. 민들레 꽃밭은 하루 종일 볕이 잘 드는 남쪽인데 말이다. 대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꽃비를 맞느라 아이와 난 땀으로 촉촉해졌다.


민들레 구경은 가지 못했다. 노란 민들레들이 서둘러 떠날까 봐 걱정됐지만 오늘 못가도 괜찮을 듯하다. 귀여운 노란 꽃은 없더라도 민들레가 동그랗고 보송보송한 갓털을 잔뜩 만들어 놓을 테니 말이다. 쩌면 아이는 더 좋아할지 모르겠다. 마스크를 잡은 채 조심스럽게 '후후' 소리를 내는 아이가 안쓰럽겠지만, 어디서든 아이들이 '후후' 맘 놓고 민들레 갓털을 부는 소리를 듣고 싶다.


벚꽃이 지는 동안 아이도 나도 웃었다. 시작과 끝이 다 의미 있다는 것을 서로 말로 할 필요가 없었다. 어서 봄비가 촉촉하게 내려서 다음에 필 꽃들도 힘을 내길 바란다. 아이와 난 꽃비 덕분에 마음이 촉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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