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봐도 이상했다. 비비추가 뒤덮은 곳은 제비꽃이 절반은 차지했었는데, 올봄엔 아무것도 솟아나지 않았다. 찔레꽃은 향기를 풍기며 만개했는데, 봄망초들이 보이지 않았다. 기대하던 야생의 향기는 달콤함과 풀향을 뒤섞은 것이 었지만 바람에 맡아지는 건 찔레 향뿐이었다. 풀밭에 초록 야생이 만발하지만, 나는 사실 초록이 아닌 것들이 궁금했다.풀숲을 기웃거리며 꽃과 열매를 찾았다.
붉은 뱀딸기는 동글동글 영글었고, 흰토끼풀꽃은 사탕 같은 향기로 벌들을 이리저리 부르는 듯했다. 토끼풀꽃이 무성한 사이로 다른 꽃이 보였다. 바로 봄망초꽃이었다. 지난봄 무릎 위까지 컸던 봄망초는 토끼풀 꽃이랑 비슷한 키만 했다. 한 뼘도 안 되는 작은 키였다. 망초는 기다란 줄기가 늘쌍 보는 모습인데 어찌 된 일일까? 동네 화단을 다 돌았지만 키가 제대로 큰 망초는 보지 못했다. 키가 작아졌다고 해서 꽃도 제대로 피지 않은 것은 아니니 다행이었지만, 왠지섭섭한 기분이 들었다.
2022.05.08(봄망초)
똑같은 화단이지만 작년 봄과 지금은 달랐다. 넓은 화단은 가끔씩 산책 나온 개들이 킁킁대거나, 새들이 성큼성큼 걸어 다니며 벌레를 찾는 곳이었다. 넓은 화단은 태양이 비추는 걸 방해하는 장애물도 없는 양지바른 땅이었다.
연분홍빛의 섬세한 봄망초가 바람에 흔들리며 만발한 꽃밭을 상상했었다. 무엇이 봄망초를 작아지게 한 건지 대단한 자연현상을 발견한 듯 관찰하고 싶었다. 이유가 뭔지 말이다.
잠시 뒤 느티나무 뒤에 그림자가 검게 드리워진 곳에 만발한 봄망초 꽃밭을 발견하고는 할 말을 잃었다. 나무 아래는 늘 응달진 곳인데 봄망초는 만발했다. 화단 안쪽이라 가까이 들어가 볼 수 없었지만, 지난봄에 만난 봄망초 꽃밭과 똑같았다.
자연의 정원사는 이럴 때 실력을 발휘하는 것일지 모른다. 대부분의 야생초들은 씨앗으로 다음 생애를 시작하는데, 오랜 시간 땅속에서 준비를 하다 싹이 트고 세상으로 나올 기회를 다 갖는 것은 아닐 것이다. 태양을 향한 성장 욕구는 똑같을지 모르지만 누릴 수 있는 환경은 달랐으니까 말이다.
지난봄 망초가 필 무렵 레이철 카슨의 <자연, 그 경이로움에 대하여>를 읽었다. 일 년 만에 또 같은 책을 펼쳤는데, 자연을 보는 혜안을 갖춘 아름다운 그녀 목소리로 가득했다.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녀의 말은 내면 깊은 곳까지 내려와 나를 일깨웠다. 그래서일까. 처음 보는 책처럼 꼼꼼히 겸손하게 고개 숙여 읽게 했다.
아주 작은 것들의 세상이 있다. 작은 나머지 아주 드물게 눈에 띄는 세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어린이들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것들을 잘 볼뿐만 아니라, 그런 것에서 기쁨을 느낄 줄 안다. 아마도 어른인 우리보다 작아서 땅과 더욱 가깝기 때문이 아닐까.
자연이 빚어낸 가장 훌륭한 작품 가운데 많은 것들이 아주 작다는 사실을. - 레이첼 카슨 의 <The sense of wonder: 자연 그 경이로움에 대하여>
아이들은 정말 작은 꽃도 잘 찾는다. 땅과 가까이 있어서 일지 모르지만 비슷한 처지일 때도 많아서일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의 말에 마음을 열고, 커다란 성공도 아주 작은 것에서 시작한다는 걸 알려줄 수 있다면 좋겠다. 그렇지만 늘 작은 것엔 시시하다는 혹은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나쁜 마음이 섞여 있었다.
봄망초가 예전처럼 폼나게 피지 않았다고 실망하던 나는 나 자신에게 물어봐야 했다.
'지난봄에 봄망초가 필 때 너는 어땠니?
지금의 너는 작년 봄과 똑같은지 생각해 봤니?'
나는 답을 내지 못했다.
다음날 봄망초는 어제보다 더 피었다. 땅에 가까운 꽃송이를 보려고 고개를 더 푹 숙였다. 사진을 찍으려고 쪼그려 앉았는데 향긋한 향기가 맡아졌다. 그리고 고백하듯 말했다.
'지난봄 널 만날 때 보다 더 엉망인 거 같아. 더 나아지려고 애써봤지만 제자리걸음만 한 기분이야.'
똑같거나 나아지지 않다고 불행한 것도 실망할 일도 아닌 걸 알면서도 말이다.
나도 알고 있었다. 떠올리기 싫을 만큼 답답한 날도 있었지만, 그럭저럭 좋은 일도 있었고 견딜 만했다. 자연은 늘 가까이에 있다고 아무렇게나 보려 했던 마음은 책을 읽고 나니 부끄러워졌다. 같은 장소, 약속한 시간에 찾아와 준 꽃이 고마웠다.
키 작은 봄망초는 레이첼 카슨이 말한 작은 세상이 무엇인지 알려 주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봄망초가 내게 땅을 더 가깝게 보는 법을 가르쳐 주려 했었나 보다.
새싹이 새롭게 돋아난 봄이면 레이첼 카슨의 책을 다시 보고 싶어 진다. 매년 그녀의 책을 읽어야 할 듯싶다. 나의 지혜는 봄망초 키만큼도 크지 못한 것을 인정해야 했기 때문이다.봄망초 꽃에게 미안했다.
읽은 책을 다시 펼쳐보는 것처럼 자연은 같은 꽃을 피게 해서 나를 일깨워주는 건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