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착한 텃밭

꽃은 지고 콩은 여물어 간다

애도 일기

by 무쌍

아무것도 하기 싫어 주저앉았다. 기다리는 소식은 오지 않고 온갖 어두운 상상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블라인드를 걷어내고 창문을 활짝 열었다. 바짝 마른 날씨 때문인지 식물들이 힘없이 축 늘어져있었다. 조리개에 물을 채우려고 도꼭지를 틀었는데, 울한 감정이 쏟아졌다.

식물에 물을 주고 나서 화분마다 하나씩 안부를 물었다. 유독 변화 없는 화초들 사이에 텃밭 상자가 가장 쉴틈이 없어 보였다. 어느새 아이가 심은 호랑이콩은 줄기마다 꽃봉오리가 롱거리며 새꽃이 피 있다.

콩꽃은 아무리 봐도 신기해서 모양을 설명하기가 쉽지 않았다. 으로 보면 장화처럼 신발 모양이지만, 꽃이 피면 아래로 꽃잎이 펼쳐지며 하트 모양처럼 대칭이 되었다. 호랑이 꽃은 겉은 레몬색이고 속은 연보라 빛의 작고 귀여웠다. 꽃이 시들면 꽃받침에서 꼬투리가 길어지며 점점 커졌다. 하루 만에 시드는 꽃이 아쉽지만, 꽃이 지고 나면 씨앗을 여문 꼬투리가 기다려졌다. 콩 먹는 것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아이들도 기대하는 눈치였다.


꽃 한 송이가 꼬투리 하나로 바뀌는 모습을 일주일 넘게 지켜보고 나니 꽃은 더 피지 않았다. 대신 꼬투리 속 콩이 자라는 것이 눈에 보였다. 동글동글 알이 부풀어지며 꼬투리 양쪽이 똑같이 불룩해지 있었다.


물이 젖은 촉촉한 흙은 무슨 힘으로 텃밭 상자의 식물들을 자라게 하는 것일까? 흠뻑 물을 주고 나니 전 보다 기운을 차린 듯 콩도 이파리가 뻣뻣해졌다. 울적한 나와는 다르게 텃밭상자 속은 싱싱하고 건강한 초록 기운이 넘치는 것 같았다.


시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지셔서 여느 때처럼 설날에 모시지 못했다. 그리고 내내 병원에 입원하고 계셨다. 시아버지의 상태에 따라 오락가락하는 일상은 계속되었다. 평소처럼 책을 읽거나 글을 쓰지 못했다. 시아버지가 회복되시면 나도 예전처럼 돌아갈 것 같았다. 회복이 더디고 늘어졌지만 기적처럼 일어나실 거라 믿었다.

여러 개의 링거 주사를 맞으며 누워 계신 시아버지 분명 회복되고 계셨다. 지만 른 더위가 가장 슬픈 사연을 함께 데리고 왔다.

누구나 건너가야 하는 곳이지만, 아버지는 2년 전 먼저 떠난 어머니를 만나러 가셨다. 평소 산을 좋아하셔서 일까? 볕이 좋은 봄날 나란히 두 분을 보내드려야 했다. 콩이 단단하게 여물어 가듯 내게 시간은 더 견뎌내라고 하는 듯하다. 을 비운 사이 꼬투리는 손가락 만한 해졌다.


얼마 뒤면 호랑이 콩은 잘 여문 결실을 내게 줄 것이다. 록달록 고운 무늬를 한 호랑이콩처럼 부모님이 알려주신 교훈도 내 삶에 무늬처럼 새겨진다면 좋겠다.

씨앗을 남기려면 꽃은 희생을 해야 한다. 꽃은 자신의 모든 것을 담아 유산처럼 씨앗을 남긴다. 마치 자식을 남겨두고 떠나야 하는 부모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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