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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착한 텃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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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쌍 May 07. 2022

텃밭은 주인을 닮았다

밭주인의 스타일

 열어둔 베란다 으로 굽는 냄새가 안으로 들어왔다. 어느 집에서 삼겹살을 굽는지 알 수 없지만 냄새는 한참을 진동했다. 소한 삼겹살 냄새가 풍기는데  다른 것이 나를 군침 돌게 했다.


 릿속에선 지난봄 실컷 던 텃밭 채소가 어른거렸.  구워진 고기를 상추깻잎 포개 한입 먹고 싶다. 연두색 상추는 부드럽게 아삭거리고, 특유의 고소 맛 적상추에 씹을 때마다 입안에 향기가 퍼지 들깻잎은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안에서 미끌 거리는 비트 잎은 건강주스를 씹어 먹는 기분이 들었다. 도독 소리를 내며 잘라먹던 풋고추도 그리웠다. 안에서  씹 초록의 맛을 느끼고 싶어다. 


 풋고추와 싱싱한 쌈채소를 들고 올 생각에 둘러 장바구니를 들고 집을 나섰다.


 어느새 나무들 초록 감싸며 몸집이 커졌다. 색색이 꽃이 피던 나무들은 같은 유니폼을 입은 듯 모두 똑같아 보였다. 앵두나무 자글자글 두가 달렸고, 매실과 살구 열매가 절반 크기 정도 자랐다. 자두와 벚나무도 성냥개비 모양을 한 작은 열매들이 확연히 다. 매들은 직은 이파리와 똑같은 초록이지만  신의 색으로 익어가는 걸  날이 마 남지 않은 듯했다.


 일단 집 밖을 나서면 발걸음이 바쁘다. 두리번거리며 살필 나무와 꽃이 많기도 지만, 참새방앗간처럼 빠뜨리 않고 찾아가는 곳이 있다. 바로 동네 공동텃밭이다. 내 밭도 아니면서 텃밭 근처를 빼놓지 않고 다닌다. 경로당 옆에 관리하는 곳도 있고, 빈 공터를 활용하는 곳도 있는데 서너 군데 텃밭 일주일에 한두 번은 가.

 길가의 꽃들이 나를 부르듯 텃밭 풍경도 나를 불러 세다. 밭들을 돌아가며 살피다 보면 멈춘 듯 지루한 날도 채소들이 무럭무럭 자라는 모습처럼 나의 내일도 기대하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무리 작은 초록 식물도 내겐 무조건 의미 있어 보였다. 

 얼마 전에 놀라운 텃밭을 찾았다. 얼핏 봤을 땐 모종 포트가 밭에 그대로 올려져 있는 줄 알았다. 잘 자란 모종이 줄지어 심어져 있는데 마치 모종을 파는 화원에서나 볼 만한 풍경이었다. 빽빽이 심어진 모종은 한 줄에 모종이 스무 개는 족히 심어져 있었다. 손가락을 모종 개수를 세어보려 했지만 바로 포기했다. 심은 작물수를 헤아리기도 버거운 밭이었다.  밭은 른 밭과 비교하자면 족히 열 배 이상은 더 심어진 듯했다.  밭을 보니 아직도 모종을 심을 자리가 넉넉해 보일 정도였다.


 웬만한 농사짓는 에 심을 만큼의 다양한 채소들이 한꺼번에 심어져 있었다. 식당을 하는 집인가 싶었는데, 그러기엔 가짓수가 너무 많았다. 호박, 오이, 가지, 방울토마토, 들깻잎, 고추도 심어져 있는데, 다 헤아릴 수 없었다. 모종 어떻게 일일이 심었는지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밭을 찾아갈 때마다 그 밭이 눈에 띄었고, 작물들은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비결이 엇인지, 밭 관리를 어떻게 하는지, 밭주인이 어떤 분일지 궁금만 쉽게 마주치지 못했다.


 다시 찾은 텃밭엔 물을 주러 나온 분들이 많았다. 그 틈에 양복바지 차림 옆 가르마가 단정한 남자분이 보였다. 반짝이는 금반지 낀 손은 집게처럼 작은 잡초를 뽑아내고 있었다. 잠깐 밭을 둘러보러 온 듯 겉모습은 절대 손에 흙을 묻히지 않을 것 같은 깔끔한 차림이었다. 다림질을 한 듯 셔츠는 주름이 하나 없고, 군살도 없는 마른 몸이었다.

 그런데 더 놀란 건 그분이 모종 판매대처럼 빽빽한 텃밭의 주인이었다. 흙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빈틈이 없는 텃밭은 어딘지 모르게 주인을 그대로 닮은 듯싶었다.

 

 리고  주인이 궁금한 밭이 있었다. 텃밭 한쪽을 나란히 꽃화분을 갖다 둔 밭이 었는데, 모든 화분 오래 손을 탄 듯 낡아 있었다. 화분에 핀 꽃은 분홍 나리와 동그란 공처럼 피는 리움, 프리지어, 달리아, 군자란처럼 쉽게 키우는 꽃은 아니었다. 처음 보는 화초도 있었는데 식물을 좋아하는 분은 분명했다. 그래서 밭주인이 당연히 할머니라고 생각했는데, 물을 주는 분은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에게 사람들이 하나둘 말을 걸며 몰려들었다. 할아버지는 꽃이 곱다고 소개했지만, 사람들은 꽃구경보다 채소 키우는 일에 조언을 구하느라 할 말이 많았다. 묻는 질문에 웃음으로 조곤조곤 말씀하시는데, 어느새 나는 할아버지 텃밭에 시선이 갔다.


 할아버지 꽃화분이 곤충들을 모두 데려와서 인가? 고추 모종을 이르게 심었다 싶었는데 고추가 벌써 달린 게 보였다. 할아버지의 헐렁한 일상복 차림처럼 텃밭은 여유가 있었다. 모종은 종류가 많지는 않았지만, 상추가 종류별로 색색이 자라고. 씨앗을 뿌려 키우시는 듯  촘촘히 올라온 싹들이 일정하지 않고 제멋대로 였지만 건강했.


  밭주인의 개성처럼 스타일이 그대로 텃밭에 드러나는 듯 보였다. 각자 생김새도 다르고 성격도 다른 우리 모습처럼 말이다. 심은 작물도 다르고 심는 방법도 같은 밭은 하나도 없었다. 그렇지만 밭에 물을 주고 잡초를 뽑고 작물들을 살피는 눈빛은 하나같이 진지하고 다정했다.


 각자 자기만의 방식대로 삶을 살아가지만, 누구나 삶에 쏟는 열정은 다르지 않아 보였다. 자연이 내어주는 보답은 그 노력을 절대 무시하지 않는 것도 알고 있는 듯 기대에 찬 모습이었다. 그래서인지 텃밭은 모두 달랐지만, 자라는 채소들은 어떤 밭만 유난히 더 크거나 못하지도 않았다. 밭마다 수확을 해도 좋을 만큼 잎채소가 비슷비슷해 보였다. 청상추도 먹을 만큼 하고, 꽃상추도 꽃처럼 핀 모습이 똑같았다.


 예전에 나를 닮았던 텃밭있었다. 밭주인은 서툴렀지만 텃밭은 내게 많은 보상을 주었다. 그래서인지 텃밭이야기는 써도 써도 끝이 나지 않는다. 텃밭을 실컷 둘러보고 나니 더욱더 쌈채소가 먹고 싶어졌다. 서둘러 장을 보러 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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