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에게 너그러워지고 싶다

무당벌레의 안부

by 무쌍

세면대 거울에 비친 내 모습 보고 깜짝 놀랐다. 머리카락에 무당벌레가 하나가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탕에 희미한 반점이 탈피한 지 얼마 안 된 무당벌레 았다. 언제부터 내 머리 위에 붙어 있었을까? 단 밖으로 가 놓아줘야겠다 싶었는데, 무당벌레가 왠지 귀엽게 느껴졌다.


그냥 보내기 아쉬워서 베란다 텃밭상자에 놓아주었다. 진딧물을 먹고 자라니 텃밭상자 안에 먹을 만한 것이 충분하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내려놓자마자 빠르게 콩잎 사이로 기어가는 모습을 보니 이들 얼굴이 떠올랐다. 무당벌레를 좋아하는 아이들 반응이 궁금해서 인지 평소보다 하교시간이 더 기다려졌다.

무당벌레가 잘 있는지 궁금해서 집안일을 하면서도 자꾸만 베란다를 내다봤다. 오이 잎을 부지런히 옮겨다니기도 하고 당근 잎에서 잠을 자는지 한참을 꼼작 않고 있기도 했다. 신기하게도 작고 동그란 벌레가 금방 좋아졌다.

텃밭상자에 살던 무당벌레

로운 식구를 인사시키듯 아이들을 데리고 무당벌레 앞으로 갔다. 아이들은 진짜로 무당벌레가 집안에 있다며 호들갑을 떨었고, 서로 고개를 빼며 무당벌레가 어디서 뭘 하는지 궁금해했다. 둘째는 무당벌레가 배고플까 봐 걱정부터 했고, 큰아이는 작고 귀여운 모습에 어쩔 줄 몰랐다. 다음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아이들은 무당벌레부터 만나러 베란다로 갔다. 하교하고 돌아온 큰아이는 현관문을 열자마자 "엄마 무당벌레 잘 있어?" 라며 무당벌레부터 보러 갔다. 둘째 아이는 무당벌레를 손가락에 올려두고 싶어 무당벌레 꽁무니를 손가락으로 쫓아다녔다.


반년 정도 키우던 구피가 얼마 전 차례로 죽었는데, 아이들은 물고기가 하늘이 아닌 용궁에 갔다고 표현을 했다. 용궁에 간 구피를 볼 때처럼 시도 때도 없이 무당벌레 앞으로 아이들은 몰려갔다. 하지만 당벌레와 지낸 소소하고 소란스러운 날은 오래가지 않았다. 우리가 함께한 건 딱 3일뿐이었다.


무당벌레가 틈으로 나갔을 꺼라 믿고 싶지만 지금 어디에 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아이들은 며칠 동안 무당벌레가 돌아왔는지 물어봤지만 잊어버린 듯했다. 아이들이 더 묻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난 아직도 화분에 물을 줄 땐 기웃거리며 잎사귀를 들춰보게 된다. 섭섭한 건 아이들이 아니라 바로 나였나 보다.

베란다 화분엔 모형 무당벌레가 있다. 오래전 원예용품 코너에서 발견한 장식인데, 화분 흙에 꽂아 두면 앙증맞게 초록 식물을 돋보이게 했다. 러고 보니 평소에 나도 무당벌레를 아이들만큼이나 좋아하고 귀여워했었나 보다.


길가에서 만난 무당벌레

집에 왔던 무당벌레는 어디론가 떠났지만, 꽃을 찍다가 무당벌레를 시 만났다. 청색 수레국화에 붙어 있던 붉은 무당벌레는 검은 반점이 선명다. 집에 머물던 무당벌레는 아니지만 전부터 잘 알고 있던 것처럼 친근했다.

대추이 벌써 작은 별처럼 촘촘히 피었길래 다가갔다가 잎사귀에 앉아 있는 또 다른 무당벌레 발견했다. 황색에 반점이 작고 연한 당벌레는 얼마 전까지 귀여워하던 무당벌레와 꼭 닮은 모습이었다. 무당벌레를 집으로 데리고 가고 싶었다. 예전 같으면 그냥 보고 지나쳤을 텐데 집착을 하는 가 어색했다. 애당초 무당벌레를 잠깐 보고 놓아줘버릴걸 괜히 집에 아둔 것이 후회스러웠다.

이렇게 보고만 있어도 귀하고 소중한데 말이다.


내가 아닌 상대를 바라보며 선을 넘지 않 것이 이런 것이구나, 새로운 감정이 느껴졌다. 각자의 삶을 사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볼 수 있다면 좋겠다. 타인을 바라볼 때도 아이들을 바라볼 때도 말이다. 모두가 스스로 삶을 살고 있으니, 누구나 삶에 쏟는 열정만큼은 자신에게 진솔하지 않을까?

자신은 없지만 용기를 내고 싶어졌다. 눈앞에 작고 귀여운 무당벌레든, 내 아이들이든, 결코 잊지 못할 마음의 상처를 주었던 사람들이라도 말이다. 엇보다 나 자신에게 너그러워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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