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산책을 나섰다. 탁 트인 바다를 보고 싶은 마음도 잊게 하고, 매일같이 찾아 가도 질리지 않는 중랑천으로 향했다. 이미 오래전에 바다가 싫어 살던 섬을 떠나왔지만 목마름처럼 물가를 찾게 되었다. 생명을 얻은 고향을 잊지 말라는 듯, 내 몸 한가운데 탯줄이 만든 자리에서 허기를 부른다. 별일 없는 하루를 보내고, 가족들의 저녁밥을 차리고 나면 지치고 허기진 몸을 억지로 끌고 나선다.
주말 동안 찾지 않았더니 중랑천 꽃밭이 영 딴판이었다. 수레국화와 꽃양귀비, 안개초도 어느새 계절 뒤로 떠나고, 막 피어난 코스모스 꽃이 만발했다. 진한 초록잎에 연한 분홍색과 자줏빛을 한 코스모스가 초가을 들판처럼 한들 거리고 있었다.
중랑천은 코스모스가 지천이다
기대했던 꽃은 없었지만, 새 꽃을 보니 좋았다. 중랑천엔 코스모스가 늦봄에 하나둘 피기 시작해서 한여름 태양에 녹아 사라졌다가 늦여름 다시 피기 시작한다. 대부분 작년에 남은 씨앗들로 피는 듯싶었다. 꽃은 가는 줄기를 올리고 바람에 떠있는 듯 가벼운 몸짓으로 그 곁을 걷는 나를 어지럽게 만들었다. 아른거리며핀 꽃을 찍다가 잎을 보니 바다에 떠다니는 해초 같아 만지고 싶어 졌다. 제주바다에 사는 톳처럼 통통하지 않지만 어딘지 모르게 비슷한 구석이 있었다.
장마가 길던 짧던 중랑천 수변공원은 꽃밭이 온전하게 버티지 못한다. 장마가 아니더라도 곧 뜨거운 태양에 녹아 버릴 꽃들이었다. 꽃 한 송이 한송이를 들여다보며 작별인사를 오래도록 하고 싶었다. 곧 찾아올 소란스러운 장마도 자연은 버텨낼 것이란 걸 알고 있었지만, 눈앞에 풍경을 다시 보는 건 기약할 수 없었다.
코스모스가 핀 꽃밭을 천천히 오가며 바다에 풍덩 빠진 듯 동화되고 있었다. 가만히 들여다보는 사람, 향기를 느끼며 곱다고 해주는 사람, 아무렇지 않게 지나는 사람, 나처럼 사진을 찍는 사람도 있었다. 오가는 사람들 대부분이 가을도 아닌데 피었다며, 꽃을 핀잔했다. 초여름 코스모스는 가만히 있어도 구설수에 오르내리나 보다.
어디 코스모스 꽃 신세만 그러한가, 사람에게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는 세상이니 말이다. 그래도 고운 꽃은 마음도 고와서 나를 부드럽게 품어주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중랑천은 어둠이 깊게 내려앉고 있었다. 사람들도 돌아가고 지는 해도 사라졌다.
아쉽지만 꽃밭 속에 푹 적힌 나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야 했다. 밤이 깊어질 무렵 장맛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벤자민 플랭클린이 손님도 삼일만 지나면 생선처럼 냄새가 난다고 했는데, 오랜 가뭄에 단비처럼 온 장맛비도 삼일이 지나자 눅눅한 냄새가 지독했다. 비가 몰고 온 시원한 바람이 좋긴 했지만 온몸에 밴 습기는 몸을 무겁게 했다. 비가 내리면 책상에 오래 앉아 새로운 글을 쓰고 싶었는데, 정작 빗소리를 듣다 보니 까맣게 잊어버렸다. 꽃을 보러 나가지 못하는 몸은 점점 무기력해졌다.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요란했던장마 손님이 떠났다.곧 다시 온다고했지만, 일상으로 돌아온 홀가분한 고요함이 반가웠다.중랑천 꽃밭이 궁금해졌다. 손님이 떠난 뒤 집안 정리를 하듯, 바쁘게 집안일을 하고 집을 나섰다.
지난해 진딧물이 번져 버티지 못했던 원추리가 장맛비에도 꼿꼿하게 버텼다. 꽃잎은 희미하게 바랬지만 꽃송이가 훨씬 많아졌다. 금계국은 작은 꽃송이들로 새로 피었고, 개망초는 머리를 감고 막 나온 아이의 머리처럼 산발이다. 걱정했던 코스모스 꽃밭은 무사했다. 가까이 가보니 꽃밭을 뒤덮은 초록은 코스모스 잎이 아니었다. 나를 반겨준 건 꼬리를 흔들며 웃는 강아지풀이었다. 듬성듬성 남은 코스모스는 꽃잎이 뜯기거나 눌린 상처가 그대로 보였다.하루 동안 내리쬐는 햇볕에 보송해지긴 했지만 예전의 생기는 없었다.
중랑천은 물이 불어나 징검다리는 완전히 물에 잠겼고, 투명하게 빛나던 물줄기는 풀색 물감처럼 진한 색으로 바뀌었다. 그러고 보니 바뀐 것이 하나 더 있었다.
큰 비에 별일 없었는지 자연을 살피는 일이 눅눅해진 이부자리를 손보는 것만큼 중요해졌다. 장마를 한고비 넘기듯 내 감정도 이제 문턱을 넘었다. 다시 장마 손님이 찾아오기 전까지 달라진 나와 잘 지낼 볼 참이다. 그나저나 손님이 언제 또 오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