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떴지만 아직 해는 보이지 않았다. 여름이 남기고 간 것들을 붙잡아 두고 싶었다. 집 앞에 여전히 능소화가 대롱대롱 새꽃이 피어나서 일까. 여름은 아직도 등 뒤에 남아 움직일 때마다 더위를 느끼게 했다. 아침해를 데리러 나갔다. 하루를 빨리 시작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산책로엔 작고 선명한 꽃잎을쫑긋 세운 닭의장풀 꽃이 무리 지어 반짝거렸다. 가을이 만든 깨끗한 하늘을 닮은 꽃잎은 가만히 보는 것만으로도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시는 듯 청량한 기분이 들게 했다. 잠시 동안 작은 꽃들을 들여다보는데 아침해가 머리 위를 곧바로 다가와 닿았다. 아침해는 내 머리를 쓰다듬듯 따사롭고 부드러웠다. 얼마나 이 아침을 기다렸는지 모른다. 잘 피해 다녔다고 믿었지만 바이러스는 가족 중에 가장 어린 막내부터 시작되었다.
주말까지 창밖을 내다볼 새도 없는 2주일을 보냈다. 가족은 모두 확진되었지만 나만 홀로 증상이 없었다. 아이들의 몸을 뜨겁게 했던 고열은 삼일이 지나자 정상체온이 되었다. 해열제가 필요 없어진 두 아이는 빠르게 회복되었고, 엄마인 나도 한시름 놓았지만 내 차례를 기다렸다. 확진된 가족들 틈에 마스크를 안 쓰고 있지만 별다른 증상이 없으니 말로만 듣던 슈퍼 면역자인가 기대도 되었다. 3차까지 백신을 맞았으니 정말 슈퍼항체가 생긴 건지도 모를 일이었다.
가족들은 곧 자가격리 해제를 앞두고 있는데, 잔기침이 나기 시작했다. 결국 3번째 검사를 한 19일 코로나 19 양성 판정을 받았다.기침은 처방된 약 덕분인지 금방 사라졌고, 입덧처럼 속이 울렁거리고 매쓰꺼운 증상이 시작되었다. 감기 몸살이 아닌 입덧 증상은 일주일 내내 이어졌다. 격리 해제가 되었지만 아직도 울렁거림은 싹 사라지지 않았다.
애 둘을 가졌을 때처럼 입덧 증상은 누워있을 때가 그나마 견딜만했다. 그래서인지 격리 해제가 되었지만 밖으로 나가는 일이 썩 내키지 않는다.사실 남편이 가장 심하게 앓았는데, 아이들도 꽤 놀란 듯 아빠를 걱정했지만, 처방된 약만으로 병원 신세는 지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남편과 나는 격리가 끝나도 여전히 축 쳐졌지만 아이들은 달랐다. 이젠 몸에 바이러스 항체가 남아있어서 일까? 바이러스의 공포를 막연히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게 된 듯하다. 끝내 겪지 않았으면 더 좋았겠지만, 잘 견뎌내었다는 가족애가 생긴지도 모르겠다.
내일을 기다리며 체온계를 수없이 들여다보던 시간도 어느덧 지난 일이 되었다. 느린 산책을 하며 아직 남은 여름 풍경을 보니 좀 더 늦장을 부리고 싶어졌다. 그동안 마음을 살피는 일에 집중했다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몸이 온전히 자연스러워질 때까지 기다려볼 작정이다.
닭의장풀 꽃(2022.09.26)
아침해가 완전히 떠올라 어느 곳을 바라봐도 맑고 파란 하늘은 끝도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닭의장풀 꽃은 내 발걸음을 따라오듯 가는 곳마다 보였다. 여름 야생화가 아직 남았으니 꽃이 핀 곳을 두리번거리며 내일도 아침해를 데리러 나갈 작정이다.
본초강목에는 이 닭의장풀로 “꽃의 즙을 취하여 청벽색을 낸다.”라고 되어 있는데, 염료 라기보다는 형광펜처럼 책에 임시 표시를 하거나, 밑그림을 그릴 때 사용되었다고 한다. 푸른색이 물들어도 오래 지속되지 않아 곧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내 몸에 들어왔던 바이러스는 진단키트에 선명한 두 선을 남겼지만, 언젠가 후유증도, 남기고 간 면역 항체도 오래지 않아 사라질 것이다.
아이들은 다시 학교로 가고 나니 집이 조용해졌다. 낯선 병을 앓고 생긴 또 다른 후유증일까? 모든 것을 다 가진 듯 어떤 부족함도 느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