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일가게를 두리번거리는 일은 즐겁다. 특히 추석 명절 시즌이 지나고 과일가게는 재철이고 저렴한 과일들이 많이 진열되어 있었다. 딱 알맞게 익은 포도가 종류별로 늘어져 있고 비닐하우스에서 생산되는 여름과일들과 단감과 연시까지 여름과 가을색을 입은 과일들이 가득했다.
사실 얼마 전부터 수확기가 된 무화과가 저렴해지길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들은 무화과가 꽃이라고 배웠다면서 무슨 모양인지 궁금해했다. 가끔 무화과잼을 사 먹었지만 무화과 향보다는 심심한 딸기잼을 먹는 기분이 들었다. 말린 무화과도 맛본 적 있지만 굳이 사 먹을 일은 없었다.
작년보다 열매가 작아 보이긴 했지만 생무화과 한 상자를 사들고 왔다. 남편에게 자른 무화과를 보여주며 가장 잘 익은 부분을 먹어보라고 내밀었다. 한 번도 생과일로 먹어본 적이 없다면서 기대를 한 듯 받았다. 그런데 맛을 본 남편은 얼굴이 이상하게 이그러지며 입안에 넣은 무화과를 겨우 넘겼다.
"이게 무슨 맛이야?"
"음,,, 달고 심심한 맛?"
그러고 보니 무화과 맛을 설명하기가 쉽지 않았다. 내 입엔 어려서부터 맛을 봐서 인지 익숙하고, 딸기처럼 씨앗이 씹히긴 하지만 물컹하고 단맛이 마지막에 녹는 맛이었으니 비슷하게 비교할 만한 맛을 바로 찾아내지 못했다.
"이거 가지 맛인데? 그냥 익힌 가지 같다. 나는 안 먹을래."
남편은 손을 들며 가버렸고, 아이들 차례였다. 그런데 아이들 얼굴이 심상치 않았다. 냄새를 맡더니 무화과가 맞는지 한 번 더 물었다. 열매 안에 꽃이 들었는지 보고 싶다더니 자른 조각을 보고는 나를 빤히 봤다.
"안에 꽃이 있는 거 맞네. 엄마 이제 먹어봐. 무슨 맛이야?"
아이들은 맛볼 생각이 전혀 없었고, 내가 맛을 설명해주길 기다렸다.
"음. 잘 익은 무화과 맛이야. 딸기랑, 가지랑, 호박이랑, 아보카도랑, 키위랑. 여러 가지 맛이 섞인 맛이야."
나는 무화과와 비슷한 식감과 맛을 생각나는 대로 말했지만 정답은 하나도 없었다.
오래전 귤밭에 있던 무화과나무엔 여름을 보낸 선물처럼 알이 실한 무화과 열매를 남겨주었다. 해마다 열개 남짓 무화과가 달렸는데 시장에 파는 무화과보다 훨씬 큰 열매였다. 아빠는 무화과가 완전히 익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겉껍질이 살짝 벗겨질 때가 되어서야 따 드셨다. 아빠의 손 주먹만 한 무화과는 톡톡 씨앗을 씹는 소리와 함께 아빠를 웃는 얼굴로 바꿔놓았다. 가끔 애벌레가 들어가 놀라게 하기도 했지만 귤밭에 무화과는 한 개씩만 아껴드시던 간식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거지만 무화과는 많이 먹으면 입안에 피가 날 정도로 상처를 남긴다고 한다. 소화제로 탁월한 효능이 있지만 과하면 문제가 되는 과일이었던 것이다.
아빠가 무화과를 드실 때마다 내게 먹어보라고 권했지만, 늘 사양할 수밖에 없었다. 무화과보다는 덩굴에 달린 다래가 더 맛이 좋았기 때문이다. 무화과를 마트에서 고르다가 토종다래를 파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려서 먹던 다래보다는 더 크고 달콤해 보였다. 귤밭도 없고 시골에 사는 친척도 없으니 맛볼 일이 없겠구나 싶었는데, 이젠 마트에서 살 수 있다니 반가웠다. 이럴 줄 알았으면 무화과 말고 다래를 사고 올 것 그랬나 보다. 남편과 아이들도 다래 맛은 인정해줄 듯싶다. 다래 맛을 보면 또 귤밭 생각이 나서, 나는 또 말이 많아지고 가족들이 슬슬 자리를 피하겠지만 말이다.
무화과를 냉장고에 넣어두고 혼자 꺼내먹는다. 아무도 먹지 않는 무화과는 꼭 아빠를 닮았다. 나만 알고 있는 아빠의 기억처럼 무화과는 나 혼자만 맛을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