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만 아는 맛

팥 도넛과 보리빵

by 무쌍

학교 안 가?! 빗소리에 잠이 안 깨는지 아이들이 나무늘보가 되었다. 겨우 밥상에 앉긴 했긴 했지만 눈을 못 뜨는 아이들럼 잠이 안 깨긴 나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피곤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달력을 7월로 넘기고 나서부터 마음 한구석이 신경 쓰였는데, 다음 주 작될 아이들의 여름방학문이다. 시작도 안 한 방학식을 앞두고, 누명을 쓴 죄수가 된 듯 억울한 하소연이 하고 싶었다.

'뭐야 방학 날부터 급식이 없는 거야?!' 나처럼 솜씨 없는 엄마는 방학 동안 밥상을 차리느라 몸살이 난다. 치면 평소처럼 할 일 들이지만, 일단 거부 증상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다. 엄마의 불편한 심기는 곧 시작될 방학 때문이었지만, 아이들도 유난히 비협조적인 날이 있다. 딱 그날이었다.


아침부터 줄줄이 뿜어져 나오는 잔소리가 멈추질 않는데, 남편이 내 귀에 속삭였다.

"수요일이잖아. 팥 도넛 사 먹자."

남편이 한 말에 난 금방 웃음이 나왔다. 매주 수요일마다 근처 아파트 단지에 장터가 열린다. 그 집 꽈배기를 먹은 지 한참 되어서 인지 더 먹고 싶어졌다.

하얀 설탕이 뭍은 꽈배기와 도넛을 먹을 생각을 하니 나오던 잔소리도 사라졌다. 아이들에게 사탕발림하듯 남편의 제안에 넘어가 버렸다.


맨 먼저 만든 걸 사러 가기 위해서 오픈 시간에 맞춰갔다. 꽈배기 집은 같은 자리에 천막을 세우고, 판매대는 이미 채워져 있었다. 비가 내리고 있어서 인지 뜨거운 기름 냄새와 반죽 냄새가 섞여 더 군침을 돌게 했다. 뽀얗게 숙성된 반죽을 만지는 손은 바쁘게 새하얀 반죽을 만지고 있고, 판매대엔 노릇하게 익은 꽈배기와 도넛이 먹음직스러웠다. 문을 열고 갓 튀겨진 꽈배기와 도넛 맛은 아무래도 바삭하고 더 고소한 듯하다. 첫 손님인 듯 판매대 앞에서 반가운 인사말을 건넸다.

우리는 늘 찹쌀도넛, 팥 도넛, 꽈배기가 섞인 세트를 산다. 먹고 싶은 만큼 먹고 싶지만, 하나는 모자라고 둘을 아쉽고 세 개가 적당했다. 그리고 가장 좋아하는 팥 도넛을 맨 마지막에 먹는 순서를 고집하며 맛있는 맛을 아껴두는 기분을 즐긴다.


배기의 삭한 맛은 잔뜩 예민던 신경세포들을 느슨하게 만들며 입안에서 사라졌다. 금방 먹어버린 꽈배기와는 정반대로, 찹쌀도넛은 작지만 쫀득쫀득 달라붙어 천천히 씹어 먹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남은 건 가장 좋아하는 팥 도넛이었다. 으깨진 단팥은 푸근한 할머니처럼 보들보들 한 맛이 난다.


먹을 때마다 예전 할머니가 주셨던 팥이 든 보리빵 맛이 생각나는 건, 고소한 팥소를 아껴먹던 기억이 떠올라서 인가보다. 그 혼자만 아는 맛 때문에 팥 도넛을 맛있게 먹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일까? 나도 동심으로 돌아가 아이들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한다. 그 맛이 여름 방학도 그럭저럭 지내보라고 할머니처럼 다독여 주었다.


또 먹으려면 일주일을 기다려야 하는데, 방학하기 전에 한 번은 더 먹을 수 있을 듯싶다. 아이들과도 그런 시간이 있다면 일주일에 한 번쯤은 즐거울 수 있을 것 같다. 꽈배기 집이 문을 여는 매주 수요일처럼 아이들과 그런 날을 네 번쯤 보내면 방학도 끝이 날 것이다.

런데 갑자기 보리빵 맛이 예전과 같은지 먹어보고 싶어졌다. 혼자만 알고 있던 맛이 맞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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