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엄마노트

복권 명당 판매점 근처에 산다

하루라는 복권

by 무쌍

유모차를 끌고 아이를 보던 시절이다. 낮잠을 안 자고 아이가 보채자 유모차를 끌고 밖으로 나갔다. 아파트 놀이터에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수군수군 동네 할머니들이 머리를 맞대고 심각한 듯 보였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진지한 표정이었다. 잠시 뒤 유모차를 밀고 내가 나타나자 할머니들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셨다. 무슨 일이 났는지 묻고 싶었지만 내 시선을 피하듯 흩어졌다. 궁금한 것을 못 참는 내 성미를 달래줄 아는 분이 아무도 없었다.


궁금증은 잠시 뒤 유치원에 간 아이의 하원을 기다리다가 풀렸다. 동네 크고 작은 일에 정통한 아이의 유치원 친구 엄마에게서 였다. 선을 넘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은밀한 동네 정보도 평소 잘 알고 있는 언니였다.


"언니, 동네 무슨 일 났어?"

"몰랐어? 요 아래 과일가게 알지? 왜 문 닫은 과일가게."

"그런데 왜?"

"얼마 전에 로또 1등 당첨 됐거든. 그 아저씨가 길 건너 복권 판매점에서 주 복권을 모양이야."

"진짜?"

"당첨금이 얼마인지 모르겠는데, 지하철 역사에 바로 연결된 신축 빌딩에 목 좋은 상가를 샀나 봐."


그 당시 아파트로 들어오는 골목엔 과일가게 서너 곳이 있었다. 그중에 가장 비싸게 과일을 파는 집이라 늘 눈으로만 구경하는 과일가게였다. 그러고 보니 과일 가게 묻을 닫은 지 꽤 된 듯했다. 과일 장사하던 부부가 신축 상가를 샀다며, 큰돈도 없어 보이는데 무슨 돈인가 싶었다며 부러움 반, 놀람 반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았던 것이다.


그 뒤로 과일가게 부부가 어떻게 지내는지 소식은 없었지만, 다른 곳이 화제가 되었다. 다름 아닌 복권 판매점이었다. 워낙 작아서 출입구에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가는 담배가게에 복권을 파는 곳이었다. 1등이 나온 후 사람들이 몰리더니 가게 문을 닫는 날 빼고는 복권을 사려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 계속해서 1등이 추가되고 2등도 연달아 나오니 새로운 당첨자가 나올 때마다 스티커가 붙여지고 현수막이 걸렸다. 1등 당첨 회차가 10번이 넘어서자 동네 분위기도 달라졌다. 어디선가 소문을 듣고 오는 사람들로 가게 앞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본의 아니게 나는 복권 명당 판매점 근처에 사는 사람이 되었다.


복권 명당 판매점은 또 있었다. 새로 이사 온 동네엔 예전 동네보다 스케일이 남다른 복권 판매점이 있다. 현수막에 50명이 넘는 1등 당첨 회차와 당첨 금액이 쓰여 있고, 출입문에도 최근 당첨된 날짜에 금액이 붙여있다. 동네 사람들이 모두 찾아가나 싶을 정도로 가게는 들락날락 복권을 사는 사람이 멈추지 않는다. 주말이 가까우면 더 몰려든 사람들 때문에 시선을 끈다. 연달아 1, 2등이 나오던 여름엔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이사 오고 얼마 되지 않아 아는 동생이 대신 복권을 사달라고 한 적이 있는데 겨우 거절했다. 복권 사는 걸 즐겨하는 동생이라 한 번으로 끝날 것 같지 않아서다. 동생은 내게 집 근처에 명당 복권 판매점이 있는데, 복권을 사보라고 사람일은 모른다며 웃었다.

복권에 당첨이 된 사람들도 부럽지만 판매점을 운영하는 사장이 참 부럽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북적이는 가게가 될 수 있는지 물어보고 싶으니 말이다. 옆 상가는 빈 가게가 대부분인데 그 가게에 찾는 사람들은 전혀 줄어들지 않는 듯했다. 정말 명당은 따로 있는 걸까? 어쩌다 보니 나는 또 복권명당 근처로 이사를 또 온샘이 되었다.


지난달 꿈이 신기해서 복권을 사러 갔다. 내가 내민 금액에 맞춰 복권 종이가 찍어지는데, 뭔가 좋은 기운이 내게 온 듯 부적 같았다. 이제는 휴지조각이지만 당첨발표 직전까지는 행운의 부적이었다.


복권을 매주 사는 사람들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하지만 나처럼 어쩌다 한 번 복권을 사는 사람에게 운이 올리가 없었다. 복권을 매주 사러 가면 당첨될 확률이 높아질지도 모르지만, 매주 복권 사는 일은 아무래도 내 스타일은 아니다. ^^; 복권 당첨된 직장동료가 있었는데, 당첨금액이 삼십만 원 정도였던 것 같다. 당첨돼서 좋아했지만 1년 동안 복권 사는 돈보다는 적다며 너스레를 떨던 기억이 났다.

복권은 당첨도 운이지만 매주 사러가는 의지도 있어야 할 듯싶었다.

수북하게 쌓인 단풍잎 위를 걸었다(2022.11.3)

꼬박꼬박 하루라는 복권을 매일 산다. 일진이 좋은 날은 나도 가족도 술술 일이 풀리지만, 하나가 삐그덕 맞지 않은 날은 하루 종일 성가신 일이 생긴다. 칠씩 일이 풀리지 않기도 하고, 느닷없이 횡재를 하기도 한다. 다행히도 하루라는 복권은 어김없이 매일 내 것이다. 자꾸만 아쉬운 어제를 돌아보긴 했지만, 하루가 끝날 때마다 찾아올 내일을 기대한다. 당첨 일자도 금액도 정해진 복권은 아니지만 말이다. 복권 1등처럼 순식간에 부자를 만들어 주진 않아도 실망할 필요가 없다. 비슷비슷한 하루를 산다는 건 시시한 기분도 들게 하지만, 웃으며 살고 있다는 걸 자꾸만 잊게 된다.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 복권 판매점에 줄을 선 사람들을 보며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을 떠올렸다.

저물어가는 하늘은 어둑했지만 꽃처럼 화려한 나무가 우수수 뿌리는 낙엽 위를 걸었다. 막 떨어진 낙엽은 촉촉하고 풋풋한 향내를 풍기며, 충만한 하루를 마감한 듯 고요했다. 수북이 쌓인 낙엽길을 걸으니 오늘도 무사히 살았다는 것이 당첨 행운처럼 느껴졌다.

내가 걷는 길 위가 모두 명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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