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에 올랐다. 산꼭대기에서 맛보는 풍경은 땀을 흘려야 하는 수고스러움이 있지만, 탁 트인 산아래를 내려다보며 마시는 상쾌한 공기는 무척 달콤하고 인상적이다. 특별히 산을 오르는 일을즐기지 않아도, 때가 되면 그 높은 곳, 남산을 찾아간다.
산은 영적인 힘을 숲 속에 가둔 채 가파른 산 능선을 따라 솟아오르는 기운이 있는 듯하다. 꼭대기에서 내려다 보이는 모든 것들은 나보다 작아 보였다. 어디를 둘러봐도 아름다웠고, 보는 모든 풍경이 나를 들뜨게 했다. 그리고 현실과는 동떨어진 초월적인 공간에 들어선 듯 숨이 멎는 듯 가빠졌다. 중력을 거스른 듯 산 위에 오른 몸에서 어떤 힘이 느껴졌다. 그래서일까? 남산의 뜬구름 속의 산책은 바닥에 눌어붙은 의지를 '붕' 떠오르게 해 주었다. 특히 새로운 도전을 하기 전, 나 스스로를 북돋아 내는 의식과도 같았다.
태어난 곳은 제주지만 이젠 서울이 고향이 되어버렸다. 제주에서 반 서울에서 반을 살았으니 어느 쪽을 떠올려도 고향처럼 느껴진다. 두 번째 고향도 지루해지면 또 다른 곳을 찾겠지만 아직 싫증은 느껴지지 않는다. 아마도 그날 남산에서 본 풍경이 나를 붙잡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대학 졸업반이던 난 첫 면접을 보기 위해 남산 오르막길에 있던 한 영화사를 찾아갔다. 면접을 보고 나왔지만 나를 다시 부를 것 같지 않았다. 서울에 살면서도 한번 가보지 않았던 남산을 앞에 두고 그냥 내려가기가 아쉬웠다. 터벅터벅 산 정상 방향으로 걸었더니 금방 케이블카 탑승구가 보였다. 조금 더 올라가니 산 정상이었고 끝도 보이지 않는 서울 주변을 전망대 둘레를 돌며 감상했다.
서울생활은 아무래도 내편은 아니었다. 막막했다. 그래도 산 위에 부는 바람은 초여름 더위를 식혀주었고 방금 면접을 본 기억은 바람에 휙 날아가 버렸다.
산 위에선 어느 쪽에서 봐도 가슴이 뛰었다.이력서를 수없이 써야 했지만, 산을 오르며 흘린 땀 때문이었을까? 그날의 '남산 오르기 효과'는 쓸모가 있었다. 서울살이는 그럭저럭 흘러갔다. 그 뒤로 막다른 벽 앞에 설 때마다 남산에 가고 싶어졌다. 일 년에 한 번 정해진 날도 없지만 한 번씩 갈 기회가 생겼다.
남산 위에 올라 구름 속을 산책하듯 하늘에 떠 있는 듯한 몽롱함이 좋았다. 한두 발 앞으로 나서면 구름 위를 걸어갈 수 있을 것 만 같고, 온 사방이 어디를 돌아봐도 하늘이 코앞에 와 있었다. 우울한 나를 위로해주려는 건지 남산을 찾아갈 때마다 운 좋게 깨끗한 하늘에 뭉게구름이 반겨주었다.
중림동 약현성당에 가족 결혼식이 있었다. 오래된 성당은 활짝 웃는 신부와 신랑을 따뜻하게 맞아주며, 앞으로 미래를 보장해주는 듯 든든해 보였다. 막 출발을한 그들의 풋풋한 시간이 부러웠다. 날이 좋았고, 파란 하늘에 떠 있는 하얀 구름을 보니 남산이 가고 싶어졌다.
3년 만에 같은 자리를 찾았지만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가을이 만든 온도는 부는 바람에 충분히 느껴졌다. 바람은 깨끗했고 거리낌이 없이 순수했다. 산 아래가 한눈에 보이는 자리에 앉아 뜬 구름을 한없이 바라보았다.
삶은 왜 이토록 공허한지, 늘 구멍 난 곳이 부끄러웠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끝이 났음에 감사한 마음이 들다가도 아쉬운 날들이 계속이다. 얼마 전에 묵혀 두었던 글을 다시 꺼내 읽었다. 시작할 때는 몰랐는데 자꾸만 주춤해졌다.
고개를 들지 않아도 둥실 거리는 구름은 눈앞에 있었다. 높은 산에선 하늘과 구름이 나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다. 내가 살고 있는 산아래를 보려면 고개를 숙이고 한참을 내려다봐야 했다. 늘 있던 자리에서 벗어나 도망 나온 듯 거리가 느껴졌다.
그리고 기다렸다. 두근 거리며 심장박동수가 올라갈 때를 말이다.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벅찬 순간이 찾아오기를 말이다. 뜬구름 잡는 기분처럼 무모한 도전도 할 수 있을 만큼의 의지를 불러오고 싶었지만, 지난번처럼 그다지 진지해지지 않았다. 불어오는 바람이 좋아서 인지, 함께한 가족들이 웃고 있어서 인지 알 수 없었다.
남산이 나를 뜬구름 잡게 한 날부터... 작은 구름 한 조각을 내 머리 위에 두고 살고 있었나 보다. 아직 그날의 꿈을 버리지 않았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