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엄마노트

엄마는 친구 있어?

해바라기

by 무쌍

아이가 정말 궁금하다는 듯 내게 물었다.

"엄마는 친구 없는 거 같은데... 친구가 있긴 해?" 아이는 어서 대답해보라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고 보니, 틀린 말이 아니었다. 내가 먼저 찾지 않으니 친구들도 이젠 소식이 없다. 대답을 기다리는 아이에게 친구에 대한 설명이 길어질 듯해서 '엄마처럼 잘 지내고 있겠지 뭐.'라고 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땐 육아 정보도 얻고, 놀이터에서 같이 놀게 하면서 커피를 마시던 엄마들도 있었다. 하나 둘 이사 가고, 나 역시 십 년 살던 동네를 떠나왔으니 자연스럽게 그런 관계는 정리가 되었다. 살다 보니 멀어진 건지 살아가는 것이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친구라곤 이제 집 근처에 나무와 꽃들이 다 인 듯싶다. 찾아가는 친구들이 말을 못 하니 나도 조용히 입을 다물게 되었나 보다. 수다스러울 필요가 없으니 매일 만나도 피곤해지거나 힘들지 않았다. 오지랖이 좀 있던 내가 자연의 품에 반해서 지낼 줄을 정말 몰랐다. 화 수다나 문자 안부도 멀어졌지만 말이다. 글을 쓰다 보니 혼자가 더욱 좋아졌다. 뭐가 먼저인지 모르겠지만 친구들이 멀어진 사이에 나를 찾아온 것들이 있다.


그만큼의 대가를 치르면서도, 몸이 아프고서야 알게 된 깨달음은 분명했다. 잠을 자고 충전된 몸은 반나절이면 집에서 쉬어야 했다. 병을 치료하면서, 일상을 선택하는 법도 달라졌다. 프기 전엔 하루 24시간을 나만을 위해서만 써도 되는 줄 몰랐다. 내가 건강해야 관계도 정상으로 작동하는 것이었다. 누구도 나를 대신할 수도 없고, 내가 아닌 누구도 될 수 없다는 걸 몰랐던 것이다.

내 몸에 에너지만 소모만 되는 잡동사니 같은 일과들이 하나둘 정리가 되었다. 남편과 아이들과 잘 지내게 되었고,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좋아하는 걸 먼저 하다 보니 친구들을 만나지 않아도 외로운 줄 몰랐나 보다.


해바라기꽃(2022년 11월 27일)

요즘 매일 찾아가는 친구가 있다. 몇 걸음 걸어서, 찻 길만 건너면 익숙한 얼굴이 나를 기다린다. 늦봄부터 알고 지낸 해바라기는 세 계절을 보내고도 마지막 계절인 겨울까지 함께 해줄 작정인가 보다. 을 태양의 사로움 아래 피기 시작한 꽃봉오리가 귀엽기만 했다.

울이 곧 올 듯해도 가을이 쉽게 떠나지 않으니 꽃을 찍느라 좋았다.

어제 해바라기를 보러 나는데 그만 은행나무에서 떨어지는 낙엽비를 맞다가 잊어버렸다. 후루룩 뿌리듯 쏟아지는 그리고 노란 잎들을 보니 아무런 것도 필요 없었다. 나무는 벌써 가지가 앙상하고 노란 잎이 깔린 바닥은 사진을 찍었지만 떠나지 못하고 자꾸만 바라보게 했다. 을 만큼 익고 영글어 떨어진 감과 모과 사이에 온갖 모양의 낙엽이 깔려 있었다. 가을 낙엽이 주는 영감을 받아 적어보려고 한 건지, 대단한 것을 찾는 기분을 내려고 한 건지 단풍에 홀린 듯 물든 나무들을 열심히 찾으며 걸었다.


곧 끝날 가을이 아쉬웠다. 내년 봄엔 어디로 꽃을 찾으러 다닐지 궁리해보다가 결국 해바라기를 잊어버리고 집으로 와버렸다.

단풍나무 아래(2022.11.20)

아침부터 거실이 환하다. 남쪽 창문으로 빛이 쏟아지는 시간은 정오까지라서, 점심을 먹을 때가 되면 사라져서 부엌 등을 켜야 한다. 날 조르듯 내리쬐는 태양을 모른 척하고 있었다. 가만히 책을 들춰보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밖으로 나가봐야겠다. 집 밖에 꽃이 피어 있는 한 어두운 부엌 식탁에서 글을 쓰는 건 쉽지 않다.


오늘은 해바라기를 꼭 고 싶어 집을 나섰다. 가지만 남은 나무 덕분에 산책로는 몰라보게 환해졌다. 부지런한 손들이 치운 낙엽은 자루에 담겨 차곡차곡 놓여 있었다. 덥수룩했던 화단은 군대 가는 오빠 머리처럼 머릿속이 들여다 보일 정도로 바짝 손질되었다. 그래서인지 그 틈에 핀 노란 민들레 꽃이 금방 눈에 띄었다. 이러다 해바라기 꽃밭까지 무사히 도착할지 모르겠다. 길가에 핀 민들레 꽃을 따라가다 잊어버릴지 모르니 말이다.


아이는 언제쯤 알게 될까? 엄마가 친구들 만나느라 바쁘다는 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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