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진 건 떨어진 대로 두세요

고맙습니다

by 무쌍

유리창 밖의 도시는 매일 보는 풍경이다. 옷차림이 계절 따라 달라지지만 내가 사는 도시는 계절이 없어 보였다. 자연을 밀어낸 아스팔트에 새하얀 눈이 쌓이니 창밖 풍경이 달라졌다. 이 녹아 사라지면 또 같은 풍경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래서 도시에선 나무가 계절을 알리는 큰 역할을 한다. 화단의 나무들 가운데 모과나무는 늘 내 눈길을 끈다. 봄엔 고운 연분홍빛 꽃이 탐스럽고, 열매는 총총 가지에 붙어나서 몸통이 커질 때까지 요리 저리 살펴보게 했다. 다 익지 않고 떨어진 열매를 주워갈까 망설이기도 수없이 했다. 보통은 벌레가 들어차 있거나, 쪼개져 썩어 있는 것들이었지만 말이다. 수피(나무껍질)는 벗겨진 모양이 멋스럽고 살짝 빛이 감돌며 한눈에 모과나무라는 걸 알아보게 했다.


잎이 다 떨어졌지만 모과열매는 멀쩡히 나무에 달려 있었다. 아무도 거두지 않은 모과가 한가득 떨어진 풍경을 그냥 지나치기 미안했다. 가을까지 나무에 달린 초록색 모과가 푹 익어가는 걸 오랫동안 지켜보았다. 어찌 된 일인지 모과를 볼 때마다 먹음직스러운 향기가 나지 않은 듯 보였다. 작년 보다 열매가 많이 달리긴 했지만 크기도 작은 듯했다. 여름 태양이 충분히 강렬하지 않아서 인지, 비가 푹 푹 쏟아지지 않아서 인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모과 열매는 한번 끝까지 매달려보자.'라며 승부를 걸었을 것이다. 나도 모르게 모과나무를 응원하고 있나 보다. 늦가을이 되도록 모과는 노랗게 색도 들지 않고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얼마나 그 앞을 찾아갔을까? 모과가 다 떨어졌다.

며칠이 지나도 열매는 떨어진 채 그대로였다. 그리고 폭설이 내려 쌓인 눈이 숨겨버렸다.

모과나무 이야기를 쓰고 싶었지만 내 이야기였던 것 같다. 꽃이 피고 열매가 달릴 때까지도 기다리던 순간이 온 듯 싶었다. 내 맘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은 허리를 펴고 턱을 세우고 하늘을 보고 있었다. 느껴지는 감정을 매일 익어가는 열매에 넣어 두고 지켜볼 작정이었다.


배울 것이 많다는 건 언제나 자연이 알려주었다. 잘 몰라도 끝내 알려주는 인내심 있는 선생님처럼 말이다. 올 한 해는 모과나무에게 배우고 얻은 것이 많았. 가을에 모과 두 개를 손목이 뻐근하게 썰어 만든 모과차가 향기가 진한 이유도 다 모과나무 덕분이다.


떨어진 열매처럼 나의 아쉬움도 이젠 떨어뜨려야겠다. 떨어진 건 떨어진 대로 두어야 하는 것이었다. 시작은 끝과 있어야 하고 끝이 나야 새 출발을 할 수 있다. 오늘은 2022년 마지막이지만 내일은 2023년의 첫날이다. 열매를 다 떨구고 이제야 쉬는 나무에게 인사를 건넨다.

'참 고마웠습니다. 내년도 잘 부탁드립니다. '

아직 겨울이다. 열매가 없다고 해도 나는 나무를 보러 간다. 지만 남은 모과나무에 겨울눈이 싹처럼 돋아났기 때문이다. 과나무도 나도 봄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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