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분에 물을 주듯이 채워진 노트에 눈길을 붓는다. 매일 쓰기를 멈추지 않아서일까? 겨울이지만 사랑초가 올 들어 가장 많은 꽃송이를 피웠다. 집안 화초들은 계속해서 새잎이 돋아난다. 시든 잎을 잘라주고 돋아난 새잎은 점점 진한 녹색이 되며 점점 몸집이 커졌다. 꽃도 피고 꼬투리도 달렸다. 그런데 다음이 문제였다.
내가 써놓은 글을 다시 읽으면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것들 대부분이다. 얼굴을 보이지 않아도 되고, 소리를 내서 말하지 않아도 되기에 글쓰기를 만만하게 보았다. 거짓을 쓰지 않으면 될 것이고, 공개 여부는 내 의지로 조정할 수 있다고 말이다. 말하지 못하고 속병이 난 것인지, 갑상선이 망가지고 나니 오히려 용기가 생겼다. 글쓰기가 도와준 덕분에 속마음이 들키는 일이 익숙해졌다.
감추고 있던 것들이 발에 걸려 넘어지듯 드러나니 나 자신도 당황스럽고 아찔하다. '뭐야. 내가 이런 사람이란 말인가?' 글을 누가 쓰라고 한 것도 아닌데 자꾸만 들키지 말아야 할 것을 술술 자백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글로 써버린다고 인생이 달라지는 건 한계가 있었다. 부족한 것이 더 선명해졌다. 그것이 단점인지 치부인지 구분하기 어려워졌지만, 분명한 건 지금을 사는 일에 더 집중하고 삶의 방향을 긍정으로 돌려야 한다는 확신이 들었다. 누군가가 '그게 될 것 같아?'라고 내가 말을 하지만, 이제는 버튼처럼 꺼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래도 자꾸 망설이며 생각이 많아지는 건 달라지지 않는다.
연말 연초가 되면 자기 계발서가 읽고 싶어 진다. 동기부여를 해줄 실질적인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혼자 해보려고 낑낑했지만, 결국 누군가의 도움을 기다리고 있었나 보다. 선생님이 있는 학교에 다시 들어가고 싶은 건 아니지만 스승이 되어 줄 존재를 찾고 있었다. 새해가 되어도 읽던 책들이 줄어들지 않았다. 결국 책 읽기로 돌아왔다. 존 아사라프의 <해빙 잇 올 Having It all>은 가볍게 시작했지만 금방 읽지 못했다. 존은 성공했지만 성공하기 직전까지 경험은 아름답지 않았다. 책 속에는 한 번쯤 들어 봤을 위인들이 명언과 현존하는 성공한 사람들의 사례들이 나온다. 그런데 존 아사라프의 책은 좀 달랐다. 읽다 보면 물음표가 많다. 그가 물어보면 답을 말하라고 하는 듯했다. 떠올려보게 하고 스스로 생각해 보게 한다.
책에선 경험을 가장 값진 배움이란 설명이 대부분이다.
사실해보지도 않고 말로만 떠드는 건 누워서 동영상을 보고 좋아요를 누를지 말지 고민하는 것과 같은 것 같았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진짜 차이는 실행에서 난다.'라고 했다.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 시리즈 2권이 7,500만 부가 팔리기 전 141개의 출판사에서 거절당했다니 그 '실행'의 끝은 그동안 알고 있던 시도의 의미를 나는 잘못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실패는 없고 성공과 성공으로 가는 과정만 있다는 걸 말이다.
무언가를 원할 때 지금 하지 않으면 언제 할 것인가?
꽃을 피우려면 씨앗을 심어야 하고, 자동차를 사고 싶다면 돈부터 모아야 할 것이고, 책을 읽고 싶다면 당장 서점으로 가던지, 도서관으로 가야 한다. 작가가 되고 싶다면 당연히 글을 써야 한다. 내일부터 하자는 말은 정말 무서운 주술이었다는 걸 새삼 느끼게 했다.
네가 원하는 결과를 일으킬 마음가짐을 선택하기에 좋은 때가 언제라고 생각하지? "지금 당장이요." - 존 아사라프 <해빙 잇 올> Having It All
이건 작가와 그의 아들과의 대화 중 일부다. 그 밖에도 작가는 아이들과 에피소드가 많다. 첫 결혼은 실패했지만 두 번째 결혼으로 잘 지내고 있었다. 슈퍼리치가 되었어도 다른 불행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지만 그는 아니었다. 아빠로서 아이와 관계를 소중하게 여기는 그에게 더 신뢰가 갔다. 그가 얼마나 자신을 믿고, 아이들을 사랑하며 삶을 사랑하는지는 책 속에 쓰여 있었다. 분량이 200페이지 남짓인데 시간이 오래 걸린 이유는 그가 제시한 여러 사람들의 명언들과 그의 설명이 부드럽고 강압적이지 않았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자꾸 앞 페이지로 가게 했다.
책 속에 저자는 할 수 있다는데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거나, 도저히 안될 것 같았던 것일까? 쉬운 말 같은데도 내겐 어려웠던 것 같다.
스승에게, 과거의 자신에게, 아이들에게서 얻은 배움은 글 속에서 긍정적이고 자연스러웠다.삶의 경험을 그가 말한 긍정의 배움으로 데려와 보고 싶었다. 엄마 노릇을 하면서 모든 것을 잘할 수는 없으니 집안일을 하면서 몸이 지치지고 자꾸만 짜증이 났다.
그러다 알게 되었다. 설거지가 하기 싫은 건 설거지를 하느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한다는 기분 때문이었다. 그래서 싱크대를 등지고 앉아 글을 쓰며 설거지를 무시하고 있다. 글을 쓰고 나면 밀린 설거지를 할 것이다. 그렇게 순서를 바꾼 것뿐인데 설거지가 조금 즐거워졌다. ^^;
그 뒤로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먼저 하고 자투리 시간을 모아서 집안일을 한다. 아무것도 갖지 못했다고 생각했는데, 모두 가지고 있는 느낌이다.
이미 다 갖고 있으면서도 한꺼번에 모두 이루어지기를 바라다보니 알아채지 못한 걸까? 실패를 피하고 성공하는 법은 없으며, 눈에 보이는 것만이 성공의 척도는 아니었다. <해빙 잇 올>의 존 아사라프가 말한 대로라면 내가 갖고 있는 것을 확인하는 길은 오직 해보는 일 말고는 없었다. 그것을 맛보기 위해서라도 글을 쓰고 싶은 날도 쓰고, 글을 쓰기 싫은 날도 계속 써야 하는 것이었다.
창밖엔 쌓인 눈이 녹지 않는 겨울이지만, 사랑초가 폭죽 터지듯 꽃이 쏟아지며 사랑스럽다. 오늘은 사랑초와 내게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