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엄마노트

주저하지도 거리낌도 없었다

영화 <영웅>을 보다

by 무쌍

꽃, 너무 예쁜 것만 쫒다 보니 아프고 그늘진 이야기는 점점 보기도 듣기도 싫어진다. 그래서일까.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건지 부끄러울 때가 많아졌다.


내 마음도 눈도 봄이라는 아름다움의 승리를 확인하고 싶어서라는 걸 알고 있나 보다. 꽃이 핀 봄이 기다려진다. 베란다에 빈 화분을 채울 날을 기다리지만 아직 봄은 멀리 있는 듯 찬바람이 분다. 보란 듯이 일이 성사되고, 순서대로 꽃이 피듯 일도 그렇게 피면 좋을 텐데, 남편이 한숨이 길어지자 나도 같이 숨이 답답했다. 얼마 전부터 '영웅' 영화 ost를 줄곧 듣고 있는 남편을 위해서라도 움직여야 했다.


"영웅 보러 가자."

"그럴까!?"

방학중인 아이들에겐 등산 간다고 둘러대고 조조영화를 예매했다. 은근히 남편이 혼자 보고 오길 바랐지만, 남편도 혼자 가긴 싫은지 내색을 하지 않았다. 안 그래도 슬픈 영화는 우느라 힘이 빠지는데, 안 봐도 눈물이 쏟아질 영화는 보기가 망설여졌다보다.


살아있는 영웅을 만난 듯 영화를 보고 난 후 먹먹한 기분을 한동안 떨칠 수 없었다. 목숨을 걸고 조국을 지켜낸 영웅의 이야기는 감히 상상도 못 하는 시공간 너머 같았다. 똑똑히 보고 알고 있어야 하는 역사지만 그 안에 들어가 보는 것을 망설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영화 속이지만 목숨을 걸고 스스로 '영웅'이 되어야 했던 독립운동가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을 망설였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고국이 없다는 건, 내 나라가 없다는 건, 내 안에 내가 없는 것과 다를 것이 없지 않을까?

누군가에게 조정당하고,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삶을 살았던 일제강점기의 우리 선조들을 떠올려 보았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할머니가 일본어를 잘 못해서 선생님께 매일 맞으면서 외웠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상하게 화가 나는 일이 생기면, 일본어로 배운 그 노래가사가 나온다고 하셨다. 분이 나빠지면 일본어가 나와서 트라우마처럼 고통스러워 손바닥으로 가슴을 탁탁 치며 숨을 몰아 쉬셨다. 마음대로 못 산다는 건 죽을 만큼 힘든 일이라고 할머니는 말씀하셨다.


마음의 길을 잃었을 때 고통스럽다 느껴지는 건, 마음의 주인이 '나 자신'이 아니기 때문다. 독립운동은 그 '주인'을 찾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는 영화에 대해서 과거 일제 강점기에 대해서 말을 아낄 수밖에 없다.


나 자신이 누구인지 몰랐던 시절, 배운 대로 관습에 맞추어 사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다. 사회에 나와서는 스펙을 갖추고 소위 능력이 있는 사람이 되려고 안간힘을 썼다. 선택은 내가 했지만 좋아하지 않는 음식을 억지로 먹어야 했으니, 속이 거북하고, 포만감이 느껴지지 않고 불행했다.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인지 찾아보고 싶었지만, 허기짐만 채울 뿐 만족스럽지 못했다. 직접 요리를 해보면 금방 찾을 수 있을 텐데, 선택을 잘하는 요령이나 비법만 찾았다.

누가 내게 이렇게 묻는다면 나는 대답이나 할 수 있을까?


"당신의 세계관은 무엇인가요?"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같은 질문은 익숙하지만 그 질문에도 대답하지 못하던 나였다. 그러니 세계관이라는 말이 얼마나 어렵겠는가. 겁이 많고 순종적인 태도를 가진 나의 세계관으로는 숨겨진 욕구를 표현하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나도 답을 내고 싶어졌다. 적어도 내가 가진 능력 안에서 뭔가를 해내고 있다는 걸 알아채면서 살고 싶어진 것이다.

누군가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목소리를 찾으려 했다. 그것이 바로 글쓰기였다. 표현되지 않는 나를 찾는 길이지만, 감추어진 미움들도 들춰내는 일이기에 자꾸만 머뭇거리게 된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글을 쓸수록 마음의 평화가 온다는 걸, 나를 이해하게 되었다는 걸 말이다.



1919년 3월 1일은 잊지 말아야 할 날이다. 곧 삼일절이다. 그날 발표되었던 <3.1 독립선언서>의 일부다.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격려하기에도 바쁜 우리는 남을 원망할 겨를이 없노라, 현재를 수습하여 잘못을 바로잡기에도 바쁜 우리는 묵은 옛일을 응징하고 잘못을 가릴 겨를이 없노라.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는 오직 자기 건설이 있을 뿐이요. 결코 남을 파괴하는 데 있지 않노라.
새봄이 온 세계에 돌아와 만물의 소생을 재촉하고 있도다. 화창한 봄바람과 따뜻한 햇볕에 기맥을 떨쳐 펴는 것이 이 한때의 형세이니, 천지의 돌아온 운수에 접하고 세계의 바뀐 조류를 탄 우리는 아무 주저할 것도 없으며, 아무 거리낄 것도 없도다.
- 3.1 독립선언서 중에서

지난봄에도 지지난 봄에 나는 이 선언서를 들여다보았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3.1 독립선언서>를 읽었던 문학작품을 꺼내보듯 다시 읽는다.


독립 선언서는 나에게 말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타인을 의식하고 남 탓을 하는 것보다, 스스로 나아가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이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딱 거기 까지였다. 스스로 나가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알았지만. 어떻게 해야 내 힘으로 해낼 수 있는지는 전혀 몰랐다.


글을 쓴다는 건 각오가 필요했다. 내가 주인공이 되어야 했으니까 말이다. 집 앞 공원에 서있는 산수유나무엔 꽃망울이 터질 듯 부풀었다. 봄은 주저하지도, 거리낌도 없다. 자연이 하는 일은 '아무 주저할 것도 없으며, 아무 거리낄 것도 없다'는 <3.1 독립 선언서>에 쓰인 그대로였다.


삼일절 다음날이는 새로운 학년이 된다. 나도 울 것이 남은 신학기 학생처럼 각오를 단단고 '새봄이 온 세계'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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