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동상이몽

눈을 기다린 피카추와 그 주인

feat. 동상이몽

by 무쌍

아무튼 눈을 사랑한다.

눈을 보면 눈이 멀어지는 내 남편이야기다. 겨울이 오지도 않았는데 첫눈을 기다리고, 펑펑 쏟아지는 함박눈을 보면 환호성을 지른다. '눈(snow)'이라는 말에 시도 때도 없이 빠른 반응을 한다. 편을 만나고 첫겨울이었나 보다. 함박눈이 내리기 시작하니 남편 휴대폰이 자꾸만 징징 울렸다. 평소 눈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친구들이 눈이 온다고 상황 보고를 하는 듯 했다.


그래서 좋은 점도 있었다. 아이들이 눈놀이를 하고 싶다면 마다하지 않으니 말이다. 오히려 아이는 귀찮아하고 아빠는 부추기듯 데리고 나가는 날이 더 많았다.


지난달 토끼귀처럼 두 귀가 앙증맞은 포켓몬에 나오는 피카추 눈덩이를 보았다. 누가 만들었는지 몇 년 전에 SNS에 올라온 눈오리 사진을 보며 신기했는데, 모양도 가지가지 많아졌다. 아이들 준다고 샀던 눈사람과 곰 모양 눈집게도 있는데, 번개꼬리를 한 피카추가 자꾸 눈에 밟혔나 보다. 우연히 문구점 앞을 지나다 홀린 듯 사들고 와서는 눈이 내리는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포장도 뜯지 않은 채 현관입구에 놓여진 피카추를 보며 아이들은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아빠 눈 안 오나 봐. 피카추 불쌍해."

"아빠 내년을 기약해야겠네 피카추 불쌍해."


설명절도 지나고 다음 주면 입춘인데 큰 눈이 올 것 같지 않았다.


그런데 참 신기하다. 새벽부터 내린 눈은 소복하게 쌓였다. 학교 가는 아이들과 집을 나선 남편은 등교하기 전에 눈덩이를 만들어 보려고 했지만 신통치 않았나 보다. 눈이 안 뭉쳐진다며 이상하다고 구시렁하더니 결국엔 눈놀이를 제대로 했다. 공원에 줄 세워 만들고도 아쉬웠는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산책 나온 강아지가 오줌 누듯 여기저기 하나씩 피카추를 세워두었다. 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아이들을 위해서 라며 문 밖에도 피카추 눈덩이가 전시되었다.


이상하게 나는 눈을 만지고 싶지 않다. 눈 쌓인 풍경을 멍하니 눈을 보기만 할 뿐 손이 가지 않는다. 창밖에 솔솔 뿌리는 눈송이를 보고 있는 편이 좋다. 어쩌면 나는 남들이 말하는 '꽃은 금방 시들어버리잖아요.'처럼 '눈은 금방 녹아버리잖아요.'를 고집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눈엔 꽃이 시들어도 꽃이고, 어디든 피면 꽃이다.

꽃을 좋아하면서 바라보는 것에 더 익숙해진 것일까? 예쁜 것은 보는 것 만으로 충만한 감정을 불러온다. 그 안에 풍덩 들어가도 신나겠지만 글을 읽는 것처럼 세밀하게 세상을 바라보고 싶어졌다.


평소에는 안 보이던 작은 눈 결정체가 눈에 들어왔다. 신기하게도 작지만 같은 모양이 하나도 없는 예쁜 조각들이었다. 부지런히 눈을 뭉쳐서 모으는 남편과 눈결정 하나를 세세히 살펴보는 나는 각자 좋아하는 것이 다르다.

거미줄에 걸린 눈송이(2023.1.26)

그래서 우리는 같은 장소에서 다른 일을 하는 것이 익숙한가 보다. 취향은 같은데 즐기는 방법이 다른 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부터 남편은 맨 처음 썼던 소설을 다시 수정하기 시작했다. 그의 소설엔 우리 가족들의 이름이 들어간다. 큰 아이의 이름이 주인공인 첫 소설을 그가 눈처럼 작은 낱말을 모아서 모양을 만들고 다듬는 동안 나는 같은 공간에서 눈송이를 찍은 사진을 하나씩 보면서 어떤 사진이 좋은지 고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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