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쇄소에서 나온 책이 모자라 두 번에 나눠서 출판사에서 보낸 마지막 저자 증정도서였다. 앞서 출간된 1부는 봄에 여름엔 2부 그리고 2022년을 3일 남겨둔 겨울에 3부가 나왔다. 마지막 책이 담긴 택배 상자엔 오래 기다린 만큼 페이지 수도 천 페이지가 넘는 <시체를 보는 사나이- 3부 >가 들어 있었다.
소설은 죽음을 미리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공시생 남시보가 주인공이다. 시작은 우연히 본 시체 때문이었는데 그 시체가 자신에게만 보인다는 걸 알게 된 후 남시보는 경찰인 민우직 팀장을 도와 사건을 해결하기 시작한다. 죽음 앞에 1%의 가능성도 붙잡는 응급실의 의사처럼, 남시보는 사람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막아내려고 애쓴다.
핫 핑크 옷을 입은 3부는 시리즈 중 장대한 분량에 가장 많은 등장인물이 나오며 작가의 세계관이 그대로 함축된 이야기다. 주인공 남시보가 겪는 세상이 작가가 글을 쓴 시점을 바로 지금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현실과 닿아 있었다. 비록 소설이지만 작가는 어지럽고 냉혹한 세상에 숨어 있는 선의의 사람들을 끄집어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남편은 멀쩡하게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마케팅을 제대로 배우고 싶다고 대학원을 다녔다. 더 늦기 전에 자신을 찾는 시간을 원했다. 두 아이가 어렸고 틈틈이 육아를 도와주니 나쁘지 않았다.
배정된 초등학교는 아이 걸음으로 20분이 좀 넘게 걸리는 먼 거리였다. 남편이 아침마다 아이를 등교시켰는데 그때 한참 구구셈을 외우느라 아이와 씨름을 하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남편은 뭔가가 떠올랐다고 흥분해 있었다. 그렇게 해서 나온 이야기가 바로 <시체를 보는 사나이>다.
남편은 매일 5,000자를 채우며 소설을 올리기 시작했다. 소설 속엔 시체가 계속 나오고 항상 사건현장이 등장하니 오싹한 장면 묘사가 대부분이었다. 나는 초고부터 글을 읽고 오타를 찾아 수정하는 일을 도왔다. 소설을 읽다 보면 오들 오들 무서워서 도망 나오듯 읽을 때도 많았다. 하지만 다음 내용이 궁금해서 이런 말들을 하며 남편을 꼬드겼다.
"작가님 읽을 만하면 끊어버리고 참 너무하시네요."
"그래서 죽어요? 살아요?"
"아니 왜 죽여요."
"어머 범인이 아니었어?"
그럼 남편은 언제나 같은 대답이다.
"나중에 읽어봐."
아가사크리스티 작품을 좋아하는 나였지만 시체를 보는 사나이를 보는 내내 한 번도 결말을 간파한 적이 없었다. 그냥 작가가 써놓은 것을 쫓아가며 읽기도 바빴으니 말이다.
주말도 없이 쓰는 남편의 작업 일정을 맞추는 일은 쉽지 않았다. 초고를 3번 이상 수정했는데, 원고마감일을 맞추려면 서둘러 수정 원고를 읽고 넘겨줘야 했다.
"내일은 뭐 읽으면 돼?"라고 묻는나의 일상도 남편과 겹쳐져있었다. 그렇게 소설이 완성되어가고 있을 때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 출판사와 1년에 걸쳐 작업하는 동안 매일 그를 지켜보면서 한 번은 내 시선으로 남기고 싶었다. 아직 저자가 되어보지 않은 나로서는 신기하기만 한 경험들이었다.
결혼하고 보니 남편의 책장에는 한 권짜리 단행본은 거의 없고 최소 두 권 이상의 장편 소설들이었다. 묵직한 책을 좋아하는 건지 이야기를 좋아하는 건지 아무튼 나는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시도하지 않은 책들이었다. 알록달록 가짓수가 많은 내 책에 비하면 남편의 책은 전집을 꽂아 둔 듯 단조롭다. 그래서일까? 소설도 6권 시리즈로 나왔다. 그도 편집과정에서 줄이고 줄였으니, 원고가 그대로 출간되었다면 8권은 넘을 것이다. 긴 소설을 좋아하던 그의 취향대로 자신의 작품도 장편 시리즈가 되었다.
새해가 밝기 직전에 출판된 책은 완전체로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3부가 언제 나오냐며 출판사에 전화를 걸었다는 독자가 남긴 글에 한껏 들떴던 시간도 훌쩍 지났다. 남편이 소설가로 이룰 수 있는 기대와 새로운 도전을 할 용기를 얻을 수 있기를 바라지만, 정작 본인은 애써 담담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소설의 주인공 '남시보'가 탄생한 날 구구셈을 외우던 아이가 초등학교를 졸업한다. 이천오백육십오 페이지의 책이 나오기까지 시간을 기억하고 싶다. 남편이 장난처럼 우리 부부의 이야기를 글로 써보자고 했었는데 쓸 수 있을 런지 모르겠다. 어느 날 눈을 뜨고 보니 남편은 작가가 되었고, 나는 작가 아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