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이상했다. 산수유나무가 빙 둘러 심어진 공원이었다. 작년에 보았던 노란 꽃을 기대하고 갔는데, 나무들은 진한 빨간색 산수유가 대롱대롱 달려 있었다.
꽃으로 노랗게 덥수룩 해져 있을 줄 알았는데 꽃보다 붉은 열매가 훨씬 더 많았다. 두 마리 직박구리가 왔다가 열매를 물고 갔지만, 나무는 아직도 치렁치렁 열매가 달려 있었다. 단단하게 달려 있는 열매들을 살펴보니, 주름 잡힌 얼굴이 세월을 그대로 담은 듯 바짝 말라 젊음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하지만 나무는 열매를 하나도 떨어 뜨리고 싶지 않은가 보다.
종종 산수유꽃 아래 달린 열매가 귀여워 사진을 찍어두기도 했었지만, 이렇게 열매가 전혀 떨어진 것 같지 않은 나무들은 올해 처음 보았다.잔디로 덮인 바닥에 떨어진 열매도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열매는 떨어질 생각이 없었다.
2023.3.산수유 나무 (꽃과 열매)
<과거>
봄이 왔나요?
키가 커진 냉이꽃이 말하길
찬 서리는 벌써 떠났다고 했다
털외투를 벗어던진 목련나무가 말하길
낮과 밤이 같아지는 춘분날
꽃을 모두 내보낼 거라고 했다
내가 서있는 땅은 아직도 황무지야
태양도 만족스럽지 않아
어떤 과거는 계절이 바뀌어도 떠나지 않거든
기억에서 사라진 줄 알았는데
여름과 가을 사이에 끝이 난 이야기
겨울이 비밀을 지켜주었어
늙고 딱딱해진 과거는 이젠 그만 떨쳐버려
과거를 다 짊어진 너를 어쩌면 좋지?
봄엔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아
노랗게 핀 오늘을 붙잡아
언젠가는 열매가 될 꽃이니까
어떤 과거도 계속 버티는 건 못해
봄이 왔거든
어떤 과거는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지난날을 후회하고, 불쾌했던 기분을 반복하며 생각하고 있으니 떠날 생각이 없다. 과거는 이미 버려졌는데도 기억을 되살려 내며 다시 떠올리기 때문이다.
어느 영상에서 보았다. 투명한 컵엔 맑은 물이 들어 있었다. 잠시 뒤 숟가락으로 흙을 컵 안에 넣으며 "이 흙은 당신에게 생긴 부정적인 과거나 트라우마라고 생각하세요."
컵 안은 삽시간에 더러운 물이 되었다. 흙처럼 생긴 부정적인 기억들이 내 안에 들어왔으니, 없애고 싶을 거라고 했다. 물속에 섞인 흙을 숟가락으로 하나씩 집어서 꺼내보았지만 흙은 사라지지 않았다. 꺼내느라 내 힘만 쏟을 뿐 깨끗해지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답은 간단했다. 큰 주전자에 담긴 깨끗한 물을 컵에 부었다. 컵은 물이 넘쳤고, 점점 안에 있던 찌꺼기들이 넘치는 물들 과 함께 밖으로 나왔다. 신기하게도 없애는 방법이 아닌 깨끗한 물을 계속 채우는 것으로 정화시켰다. 깨끗한 물처럼 좋은 것에 집중하다 보면 부정적인 감정들이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것이었다.
곱씹어보기는 당분간 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참 운이 좋은 듯싶다. 봄 꽃들이 한눈팔지 않게 내 곁에서 보초를 서고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