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옷을 정리하려다 말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또 일 년이 지났다. 봄 옷을 꺼낼 때마다 입지도 않고 걸려 있는 정장을 만지작 거렸다. 시도를 하고 싶었는데 계속 미루었다는 걸 확인하고 있는 나를 보았다.
예전엔 검정 정장이 잘 어울렸는데, 다시 입어보니 여전히 어울리지 않는다. 가끔 경조사에 걸치는 것 말고는 몇 벌 안 되는 정장은 옷걸이에 장식처럼 걸려 있다.
몸을 사리는 타입은 아니었는데 한번 아픈 몸은 자신감도 모두 푹 꺼지게 했나 보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면 좀 나아지겠지 싶었는데, 몸은 수월해졌지만 밖으로 다시 나가기가 두려워졌다.
검정 재킷을 다시 입고 싶은 건지, 월급통장이 그리운 건지, 주말을 기다리며 달력을 들여다보던 날로 돌아가고 싶은지 알 수 없었다.
봄비 맞은 종지나물이 집 앞 화단에 꽉 들어찼다. 앉아서 보니 소파만 한 화단이 들판처럼 넓게 보였다.
좀 전에 보고 온 화단엔 절반은 시들어 버렸는데, 가까운 곳에 꽃밭이 있었는데 멀리 돌아다녔나 보다.
일찍 핀 꽃은 먼저 시들고 , 나중에 피는 꽃은 아직 시간이 남은 것이었다. 조급한 듯 시간이 늦어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어딘지 모르게 위로가 되었다. 좀 늦은 듯 하지만 잘못된 것은 아니었을 텐데 나도 뭔가를 하느라 참 바쁘게 살았는데 말이다. 때론 내가 나를 가장 몰라본다. 멀리 갈 필요가 없었는데 말이다.
멀리 나간 일이 헛수고였다고 생각하지 말아야겠다. 가까운 곳이 지겨워지면 멀리 나가보려는 마음도 필요했으니까.
화단에 핀 종지나물꽃을 보니 모양은 똑같은데 자줏빛을 내는 꽃잎도 있고 흰 테두리에 파란 꽃도 탐스럽다. 어떤 모습도 종지나물꽃이 맞는데, 망설이고 있는 나도 그럴 수 있구나 싶었다. 찬바람이 불어서 인지 오늘도 어제 처음 봤던 모습 그대로였다. 그래도 곧 시드는 시간이 온다는 걸 잘 안다.
내게도 시간이 온다. 옷걸이에 걸린 정장이 아직 맞는 걸 보니 올봄에 입어도 문제는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