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조용한 열정]이 끝나는 엔딩 화면을 잊을 수가 없다. 실제 주인공인 에밀리 디킨슨과 그녀의 독자를 향한 편지가 나오기 때문이다.
에밀리 디킨스의 생애를 담은 영화<조용한 열정>중
"이것은 한 번도 답장하지 않는 세상에 보내는 나의 편지이다. 자연이 부드럽고 당당하게 들려준 소박한 소식 그것은 내가 볼 수 없는 손에 맡겨진다. 다정한 세상 사람들이여 자연을 사랑하듯 나도 후하게 평가해주길"
<에밀리 디킨슨 1830-1886>
작년 그녀의 시집을 펼쳐 볼 기회가 있었지만, 삶에 대해선 알지 못했다. 아름다운 영미시를 번역한 장영희 선생님 책에서 여러 번 마주친 것이 다였다. 미국에 살았던 시인이 이토록 내 마음을 끄는 이유는 뭐였을까? 게다가 죽은 후에야 알려졌다는 작품이 왜 외롭게 기다리며 세상에 나온 것인지 궁금했다. 그리고 생애를 담은 영화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여성인권이 없었던 19세기 미국에서 태어난 그녀는 자신의 이름으로 시를 쓰는 것조차 용납되지 않았다.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빵을 굽고, 정원을 가꾸고 집안일을 하면서 글을 써야 했다. 가족들이 잠든 새벽 3시부터 동이 트기 전까지가 글을 쓰는 시간이었다. 하인들을 데리고 있으면서도 집안일에 자유롭지 못했던 그 당시 여성들의 삶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녀는 가족과 소수의 지인 외에는 만남도 거절하며, 완전히 은둔한 시인이 되었다.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 그녀에게 필요했던 건 따로 있지 않았을까? 2,000편이 넘는 시를 그녀 이름으로 출간을 할 수 있었다면, 그녀는 그렇게 홀로 지내지 않았을 것이다. 작가라면 무엇보다 작품으로 세상과 소통하고 싶어 할 텐데말이다. 사후에 그녀가 만든 시 꾸러미가 발견되었고, 시집이 출간되었다. 만약 그녀가 생존했다면 85세가 되는 나이였다. 내 상상 속이지만, 분명 그녀는 그 나이에도 어마어마한 시를 쓰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무척 기뻐하며 노후를 보냈을 것이다.
나홀로 나무 @songyiflower 인스타그램
내가 살고 있는 시대는 다르다. 적어도 내 이름을 걸고 글을 올릴 수 있다. 등단을 하지 않아도 글을 올릴 수 있고, 자비 출판도 할 수 있다. 나처럼 브런치에서 작가라는 이름으로 글을 올릴 수 있는 세상이다. 글쓰기를 정식으로 배우지 않아도 누구나 글을 공유할 공간이 있다.
3개월 동안 글쓰기 강좌를 수강할 기회가 있었다. 강사는 연륜이 있으신 분이셨고, 제자 양성(?)에 열정적이셨다. 많은 제자를 등단시키셨다며, 매주 글을 써오면 합평회를 할 기회를 주었다. 갑자기 내 글을 발표하게 되니, 쓴 글에 대한 책임감이 느껴졌고, 읽고 난 후 반응이 궁금해졌다.
부족한 글쓰기를 드러내는 건 역시 가혹했다. 매주 합평회를 하고 나면 자신감은 완전 밑바닥으로 떨어졌다. 글쓰기란, 내가 절대 알 수 없는 다른 재능이 필요한 것 같았다.
그래도 문학과 창작에 문외한인 나에게 강의는 나름대로 의미는 있었다. 내 글을 공유하고, 평가를 받았다는 것이다. 강의를 마치고도 강사와 개별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등단을 준비하는 분들도 여럿 있었다. 하지만 난 내키지 않았다. 글쓰기를 위한 모임이기도 했지만, 커피나 밥을 먹는 친목모임을 병행해야 했기 때문이다.
나는 브런치를 선택했다.아쉽지만 강사를 해주실 분은 없다. 대신에 다른 이유로 브런치에게 기대를 한다.
사람들과 공유하는 글쓰기와 나 자신을 위한 글쓰기를 동시에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시인 에밀리 디킨스의 생애와 작품을 감히 내 삶과 견주는 것은 말도 안 되지만, 그녀가 용기 내어 작품을 써놓지 않았다면 그녀가 시인이었다는 걸 누구도 몰랐을 것이다. 그리고 평가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이며, 억지로 만들어질 수 없다. 나를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계속 나아가야 한다. 방금 또 하나의 내 글이 쓰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