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동상이몽

떡볶이의 온도

여름의 끝

by 무쌍

집을 나설 때부터 목이 탔다.

폭염 주의보 안내 문자가 모닝콜처럼 연달아 울리고, 전철역 대합실에서도 폭염 안내 방송이 계속 들렸다.


정원 일을 하러 나가는 길이었다. 혼자 일하러 가는 내가 신경 쓰였는지, 주말 근무에 남편이 따라나섰다. 근무 일정을 조정하다 보면 주말에 나가할 때가 있는데 딱 그날이었다. 잡초 뽑기, 물 주기, 가지치기, 화분 정리, 낙엽정리 정원을 손질하는 일은 집안 베란다 화분 앞에서 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 그렇지만 정원 사이즈가 크다 보니 결관리를 하다 보면 시간이 금방 간다는 것이다. 다른 계절보다는 훨씬 손이 많이 가기도 하거니와 목마른 식물에게 물 주기 시간이 만만치 않았다. 자보다는 둘이 고마운 일이기도 했다.


여름의 정원은 쨍쨍 내리쬐는 태양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모자를 쓰더라도 온몸에 땀이 쏟아지는 걸 막을 수 없으니 말이다. 텃밭에서 일하고 돌아가는 길엔 수확물이 있어서 즐겁지만, 정원 관리를 마치면 장갑이 젖어 있을 뿐 빈손이다.

장실 거울에 비친 얼굴을 보면서 발그레 달구어진 양 볼이 참 못마땅해졌다. 땀으로 젖은 머리카락이 이마에 딱 붙어 머리숱은 더 없어 보였다. 땀이 푹 젖은 몸은 열기가 사라지길 기다려야 했다. 오늘은 남편 손이 있어서 인지 그다지 몸이 뜨겁게 달아오지도 않았고, 숨을 크게 몰아 쉬지도 않았다.


문득 주말 텃밭을 하던 때가 떠올랐다.

나란히 장화를 신고 배추에 물을 주러 다니던 시절처럼 우린 또 희망을 키웠다. 구청에서 빌려준 농장이지만 사뭇 진지하게 전원생활을 상상했었다. 그때부터 인 것 같다. 남편과 나는 다음 계절로 옮겨갈 때가 되면 늘 같은 말을 한다.


봄엔 좀 좋아지겠지
여름엔 좀 좋아지겠지
가을엔 좀 좋아지겠지
내년엔 좀 좋아지겠지


보이지 않는 걸 잡으려는 우리 부부는 눈앞에서 선명하게 커가는 배추를 보면서 더 감탄했는지도 모른다. 기대만큼 자라주니 농사는 농부가 뿌린 대로 거둔다는 걸 확인하는 기분이었다. 나도 그렇게 살고 있는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그렇지만 수확물이란 자연이 주는 만큼이란 걸 알고 있었다. 결국엔 자연이 허락한 것만 가져갈 수 있다.


배추모종처럼 점점 커져서 알찬 김장배추가 되는 과정처럼, 보이지 않는 꿈이 눈앞에서 벌어지길, 자연이 주는 선물처럼 수확물이 되어주길 바랐다. 흙을 만지면서 보낸 날들은 인내심이 주는 보상을 알게 해 주었다.

텃밭에서 키운 배추로 김치를 해 먹고 나니 한해도 뚝딱 지나갔다. 꼬박꼬박 달력을 넘기며 단어를 채우는 일을 얼마나 할 수 있을지 몰랐는데, 어디로 갈지 모르는 이야기를 손가락이 끌고 가는 대로 받아 적는 일이 좋다.


글쓰기는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작고 까만 씨앗처럼 처음엔 보이지 않는다. 떡잎이 줄기가 뻗어가듯 첫 문장이 시작되면 나무에서 꽃도 피고 열매도 달렸다. 글 하나를 나무처럼 세우고 사람들을 기다린다.


산책을 나오는 사람, 나무 사진을 찍는 사람, 소풍을 나온 사람들을 지켜본다. 기다리는 일이 익숙해지면 사람들 앞에 나서는 일은 굳이 하지 않는다.

써놓은 글이 길가의 가로수처럼 관심을 끌지는 못해도 쓰는 일은 멈추지 않는다. 나무 묘목이 숲이 되는 일처럼 쓰는 일도 한순간에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일 테지. 지금은 존재하지 않지만 상상의 숲은 언제든 불러올 수 있다. 그래서일까? 보이지 않는 숲을 상상하는 것이 훨씬 긍정적일 때가 더 많았다.




젖은 흙냄새가 진동할 정도로 물을 주다 보니 정원 일은 끝이 보였다. 새로 돋아난 라일락 잎이 나를 설레게 하고, 물이 푹 젖은 화단을 보니 안심이 되었다.


점심시간이 한참 지나버렸다.

아스팔트 온도는 더 뜨거워졌고, 에어컨 바람이 나오는 곳으로 어디든 들어가고 싶었다. 북촌 거리는 사람만큼 거리엔 카페와 음식점이 많았다. 몇 걸음 가지 않아 발걸음이 멈춘 곳은 분식집이었다.


말깡해보이는 떡볶이 떡을 포크로 꾹 찍었는데, 벌써 먹은 남편 얼굴은 조용했다.

남편의 떡볶이 맛평가는 늘 냉정하다. 같이 먹은 떡볶이가 얼마나 될지 모르는지만 앞으로도 줄어들지는 않을 듯싶다.


에어컨 바람이 기분 좋게 해 주니, 아까는 보이지 않던 가게 밖의 풍경도 보이고, 달그락 거리는 주방 소리도 들렸다. 떡볶이가 익어가는 철판을 이리저리 휘젓는 주인의 얼굴을 보니 방금 전 내 모습 같았다.

태양 아래서든, 불 앞에서든 뜨거워진 얼굴은 감출 수 없는 것이었다. 혼자가 아니라 곁에서 같이 땀을 흘려주는 이가 있다는 것이 나를 웃음 짓게 했다.

빨간 떡볶이 맛은 잊어버렸지만, 따스한 감정이 뒤섞인 떡볶이의 온도는 한동안 사라지지 않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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