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동상이몽

겨울엔 버드워칭(Birdwatching)

겨울취미

by 무쌍

꽃은 없고 나무도 앙상하다.

상록수가 남은 중랑천은 초록색이 거의 사라진 겨울이다. 꽃이 없어 지루하긴 하지만 선명한 하늘을 올려다보며 산책길은 더 심플해진다. 작은 야생화를 찾던 바쁜 시선은 단조로워지고, 나무만 보던 시야는 숲을 내다보는 듯 거리를 두게 된다. 숙한 일들을 잠시 내려 두고, 차근차근 정리를 한다. 내게는 글을 쓰기에 좋은 계절이기도 하다.


그래서 겨울은 내게 여유가 무엇인지, 내뱉는 숨을 아껴가며 살아있음을 느끼게 한다. 하얗게 보이는 날 숨을 더 멀리 뿌리듯 호기심은 여전히 밖으로 향한다. 걷기 위해서다.


오늘도 산책을 나섰다.

여유를 부리는 나와는 다르게 동물을 좋아하는 남편의 시선이 바쁘다. 식물들은 겨울나기를 하는 동안 눈에 띄지 않던 새와 동물들이 한층 가까워진다.


중랑천 수변공원을 따라 걷다 보면 다른 계절엔 쉽게 보지 못한 귀여운 박새 구경을 할 수 있다.

몸집이 작은 박새는 참새와 다르게 귀여운 소리를 내며 날씬한 꼬리를 비쭉 댄다. 혼자도 다니지만 둘이 함께 춤을 추듯 공중을 휘젓는 모습을 발견하는 일은 즐겁다.

폭포처럼 내리는 물가엔 짙은 회색의 가마우지가 포진해 있다. 날개를 양쪽으로 펼쳐 들고 젖은 몸을 말리는 건지 벌을 서는지 알 수 없지만 시선을 끈다. 무리 지어 다니는 가마우지는 잠수를 하면서 중랑천 바닥을 한꺼번에 훑으며 물고기를 잡아먹는다. 그 모습이 싱크로나이징 단체선수의 몸짓처럼 박자가 딱 맞아서 놀랄 때가 종종 있다.

한두 마리가 선두에서 날아오르면 나머지는 곧바로 날아오르는 것이 아니라 지정된 자리를 찾아가듯 뒤돌아 날아서 대열을 맞추고 무리는 이동을 한다.


흰 뺨오리는 온 가족이 나온 모양이다.

어린 오리가 몸집을 키우고 있고, 잠수를 하기도 하지만 물 위에 작은 파도를 일렁이며 멀어져 가는 무리를 끝까지 바라본다.

뒤를 돌아보니 남편은 백로를 촬영하고 있었다.

종종 백로가 물고기를 잡는 광경도 보긴 하지만 남편이 좋아하는 건 배로의 날갯짓이다. 커다란 날개를 펼치며 날아오르는 모습을 보며 언제나 탄성을 지른다. 백로는 각자 자기가 가고 싶은 대로 움직인다. 함께 있지만 홀로 골똘히 해결할 문제가 있는 듯 각자 다른 곳을 보며 따로 다닌다.

마치 우리 부부처럼 말이다. 며칠 전에 보았던 붉은 클로버가 아직 남았는지 살펴보는데 남편은 벌써 백로를 따라 멀어져 버렸다.

붉은 토끼풀

몇 주전에 보았던 꽃은 이제 축 늘어진 겨울이 되었다. 꽃은 아는지 몰라도 나는 꽃에게 마지막 인사를 한다. 잠깐 울적한 기분도 금방 잊어버리게 나를 웃기는 건 왜가리다.


혼자 고독을 즐기는 건 왜가리를 따라갈 새가 없다.

회색 망토를 걸치고 긴 목도리를 늘어 뜨린 듯 모습도 쓸쓸함이 철철 넘친다. 잠을 자는지 멍을 때리는지 알 수 없지만 오늘도 왜가리는 꿈쩍하지 않고 중랑천 물가에 다리를 담근 채 서 있다.



백로와 흰빰오리
청성모와 청둥오리

서양 사람들은 '버드와칭(birdwatching)'이라고 하고 '탐조(探鳥)'라는 한자어도 있지만 우리 부부가 하는 겨울 취미는 '새 구경'이다.


새 구경을 하다가 지루해지면 중랑천 물속의 물고기들을 본다. 큰 잉어가 무리 지어 몰려오는 광경을 물 멍하다 보면 까치가 시끄럽게 몰려오기도 하고, 길고양이가 물가로 내려오기도 한다.


초록 식물들이 겨울로 사라진 중랑천은 온갖 동물들이 선명하게 보인다. 운이 좋으면 너구리도 만나는데 지나가던 사람들도 놀라 구경이 바빠진다. 길고양이들도 훨씬 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겨울은 찬바람에 겹겹 옷을 걸쳐야 하지만 산책길에 만나는 동물 친구들 덕분에 역동적이고 생기가 넘친다. 중랑천이 지루해지면 우린 동네 뒷산으로 향한다. 겨울 산은 텅 비어서 나무를 옮겨 다니는 청설 모을 찾아보거나, 딱따구리가 나무를 쿵쿵 쪼는 것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계곡 아래엔 청둥오리가 물 바닥을 훑으며 물고기를 잡아먹는다. 종종 장난치며 꽥꽥 소리를 내는 오리를 보는 구경도 할 수 있다.

아가사크리스티 시리즈를 보다 보면 마플 할머니와 포와로가 망원경을 들고 새를 보는 장면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 영국인처럼 새를 보려고 일부러 철새들이 오는 지역에 여행을 가지는 않지만, 우린 집 근처에서 새를 보며 근사한 기분을 붙잡는 일은 우리의 겨울 취미 생활이 되었다.


카메라와 장비를 들고 탐조를 나온 무리를 만나기도 하는데, 겨울이란 계절이 주는 고마운 풍경을 우리만 아는 것은 아니었다. 가끔은 그들처럼 근사한 장비를 들고 멀리 있는 새를 가까이 보고 싶은 기분도 들긴 하지만 우린 있는 그대로를 즐긴다. 겨울이 주는 장면을 말이다.


며칠 포근하고 비가 내리더니 중랑천 수변공원이 푸릇해졌다. 가까이 가보니 봄까치꽃이 초록 잎을 돋아 냈다. 곧 동지를 지나면 겨울은 한가운데를 넘어 봄을 향할 것이다. 꽃이 피고 나무가 옷을 새로 입으면 나는 또 꽃을 보느라 잊어버리겠지만, 지금 나는 겨울 취미를 즐기는 중이다. 버드워칭, 바로 새 구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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