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이 준 힌트

마음 가면

by 무쌍

냉장보관된 우유처럼 내 감정은 늘 상하기 쉽다. 적당히 냉정했어야 했다.


알아서 좋아지는 일은 드물고 모든 것은 원래대로 돌아가지도 않는다. 상한 감정을 되돌리는 방법은 없었다. 그냥 우유를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법은 뱉어버리는 것인데 일단 뱉고 나면 다른 사람들에게 들켜버린다. 감정을 정돈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감정이 상한 이유는 무엇일까. 거기서 출발하고 싶었다. 왜 나는 자주 감정이 상하는가 말이다. 신선한 우유처럼 담백하고 고소한 향기는 잘 느끼지 못하는 건 아닌지, 늘 때를 놓쳐버려서 탓을 하며 아쉬운 소리만 떠는 건 아닌지 헷갈렸다.


"숨기지 마라, 드러내면 강해진다. 마음 가면" 이 책을 정독하고 나서 알게 된 것은 내가 바로 취약성에 무척 수치심을 느끼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취약한 것에 못 견디는 것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나의 취약성은 내가 아닌 누군가 때문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더는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적어도 글쓰기를 하기 전엔 더 심했던 것 같다.


만개한 산국화(2023.11.1)


마음으로는 늘 원하는 것이 있는데 실제로는 내것은 없어 보였다. 손에 닿을 것 같은데 또 실패에 주눅이 들어 버렸으니 말이다. 그러다가 돌아섰지만 또 기웃거리며 우울해했던 것 같다.


나에게 '나는 충분히' 다음에 오는 문장을 채워보라고 하면 노트 한 권을 다 채울 만큼 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충분히 건강하지 못하다

충분히 사랑받지 못하다

충분히 안정된 삶이 아니다

충분히 살림을 잘하지 못하다

충분히 뒤에 무엇이든 끝도 없이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주 떠올리는 생각들에 '나는 충분히'를 붙이면 다 맞을 것 같아서다. 여전히 나는 부족하다는 기분을 가지고 있다. 책 <마음 가면>엔 더 많은 예시들이 쓰여 있었다. 그리고 작가는 이 문제를 '네가 부족해서 그래'라는 문화의 세 가지 요소 때문이라고 했다.


첫 번째는 수치심이다.

두 번째는 비교, 노골적인 경쟁 또는 암묵적인 비교와 순위를 매기는 문화다.

세 번째는 참여의 부재, 위험을 감수하거나 새로운 일을 시도하지 못하는 문화다.


그래서 늘 듣는 말은 '네가 부족해서 그래' 그러니 더 열심히 하란 식이다. 때때로 동기부여가 과하게 포장되면 너무 열심히 해야 한다는 강박이 생기기도 했다. 새벽에 일어나고, 하루 종일 쉼 없이 움직여야 하고, 여러 가지 일을 한꺼번에 하면서 번아웃이 오기 직전으로 지내는 것 말이다.


산책도 쉬고 가장 좋은 친구를 붙들고 있으려고 했다. 나보다 가슴이 넓고 키도 큰 마음씨 고운 이불과 베개였다.

문제는 이런저런 알람이 울리는 스마트 폰이었다. 그러다 SNS에 동기 부여 하는 글과 편집 영상을 보게 되었다. 방금 전 책을 붙들고 겨우 잠잠해졌는데, 영상이 나를 흥분시켰다. 그러다 이렇게 가만히 있으면 안 되는데 하는 기분이 들어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또 네가 부족해서 그래라는 말을 되새기고 있는 것이다. 결국 혼자서 감정이 상해 버렸다.


그래서 또 밖으로 나갔다.

몸은 무거웠지만 산책은 이불만큼 보드랍고 만족스러웠다. 익숙한 향기가 목덜미를 감싸고돌며 고개를 잡아끌었다. 바로 산국화였다. 꿀벌과 덩치가 큰 말벌까지 윙윙거리는데 꽃사진을 찍는 일은 위험해 보였다. 꽃사진을 겨우 한 장 찍고 화단을 도망치듯 벗어났다. 숲길을 들어서니 어제와는 다른 풍경이었다. 가을색으로 변해버린 낙엽을 따라 걸었다. 변덕스러운 감정을 떨어진 낙엽들에게 털어놓다 보니 변해버린 내 감정들도 다 이유가 있었다.



같은 것이 하나도 없는 알록달록한 단풍은 가을이 상징이 아닌가.


숲에선 떨어지는 낙엽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러다 툭하니 어깨를 치며 왼쪽 손바닥에 플라타너스 잎이 떨어졌다. 잡을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떨어진 단풍잎이 힌트를 주었다.


변화무쌍한 가을로 글을 쓰라고 말이다. 한결같지 않고 상하기 쉬운 감정이라도 가을엔 낙엽처럼 툭 던져두고 있는 그대로 문장으로 쓰기만 하면 될 듯싶었다.

상한 감정을 낙엽처럼 버리면 썩고 흙이 되어 새로운 봄으로 피어날 것 같았다. 필요 없을 것 같아도 자연이 하는 일처럼 버릴 것이 없다는 것을 가을이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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