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다니는 학교 정문을 따라 빙 둘러진 은행나무가 생각났다. 지난 아침 은행나무는 여름색을 완전히 버린 듯 보였기 때문이다.
이파리 끝까지 노란 물이 들어찬 은행나무는 준비가 된 듯싶었다. 바람이 부는 대로 가을 위해 몸을 던질 준비가 끝난 모습이었다.
나무는 여름이 이룬 것을 가을이 넘겨받았다. 아니 겨울에서부터 시작한 끝맺음인지도 모르겠다.
지난 늦봄 바득 거리며 무언가를 놓지 못하고 있었다. 치과 의사는 눈치 못하는 사이에 뼈를 까맣게 만든 염증이 자라고 있었다고 했다. 더운 여름이었지만, 온몸이 서늘해진 기분이었다. 복구되지 않는 아픈 치아는 버티다가 부러진 것이다. 너무 이를 악물고 하려 했었나? 몸이 편안해야 한다며 염증은 또 생길 수도 있다고 했다. 몸에 켜진 신호는 눈앞에 선명하기도 하지만 무척이나 냉정했다.
지난주 수술을 했다. 아직도 파랗게 멍이 남았지만 음식을 씹을 만하다. 치과 진료는 깨달음을 준다.
잠깐 버티고 나면 모든 것인 원래대로 돌아온 듯 아무렇지 않게 된다. 그리고 결국엔 해냈다는 안도감이 확실하다. 그래서인지 치과에 가는 것을 싫어하지 않았다.
한동안 나를 돌봐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은 치과 진료를 하면서 다 돌려받은 듯싶었다.
은행나무 앞에 서서 다시 재생할 수 없는 잊어버리기로 했다. 나무가 툭하고 떨어뜨린 가을처럼 다음 계절로 가야 하기 때문이다. 나의 계절은 뜨거운 여름을 뒤로하고 복구되지 않은 경계선을 넘었다.
은행잎 과 모과 (2023.11.5)
다 지고 없어진 줄 알았는데, 은행나무 허리만큼 큰 해바라기가 꽃 한 송이를 피웠다.
여름이 못한 꽃의 소임을 마친 해바라기였다.
더운 가을 날씨가 며칠 동안 부추인 듯싶었다. 꽃과 물든 이파리가 모두 닮은 색이었다. 비슷한 표정을 하고는 나란히 서서 나를 반겨주니 아주 느린 걸음으로 산책로를 서성거렸다.
수북하게 쌓인 낙엽 더미를 지나 아직은 쓸어 담지 못한 노란 잎을 밟으며 걸었다. 동네 은행나무들은 남김없이 모두 노란 꽃이 되었다.
가을비가 더 오면 이 노란 잎들은 트럭이 찾아와 싣고 갈 것이다. 곱씹고 다시 돌려가며 읽었던 다이어리를 정리했다. 이미 지나간 감정들이고 낙서들이었다. 은행나무가 내년에 노랗게 물들이면 기억을 소환할지 모르지만 그런 감정을 더 이상 좇지 말아야 한다.
낙엽들처럼 말이다.
집 앞에 모과나무는 손이 닿을 듯 한 가지에 열매 하나가 남아 있다. 어제도 보고 그제도 보았는데, 아직도 있나 싶어 나무를 보러 갔다. 아무리 보아도 모과가 있던 자리는 비어 있었다. 누가 따갔나 싶었는데, 나무 아래 떨어진 모과를 발견했다. 간밤에 떨어진 걸까? 오전에 내린 비에 떨어진 걸까? 가지에 쓸렸는지 긁힌 상처가 있고 쪼개지지는 않았지만 금이 나 있었다. 모과향기가 달짝지근한 꿀냄새처럼 완전히 익은 듯했다. 손을 씻으며 모과도 함께 닦아냈다. 책상 위에 올려두니 향내가 진동한다.
가을 수집품은 향기만으로도 충분한 듯싶다. 나의 여름이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모과향기는 나를 웃게 한다. 지난여름이 나의 가을에게 준 선물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