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송이의 나팔꽃

여기에 사는 즐거움

by 무쌍

책을 산 기억이 있는데, 언제 마지막으로 읽었는지 가물가물했다. 분명히 책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책장에 책을 다 뒤져봐도 이지 않았다. 려주고 돌려받지 못한 건지 들고 다니다가 잊어버린 건지도 알 수 없었다.


도서관에서 야마오 산세이의 <여기에 사는 즐거움>을 또 빌려왔다. 번을 읽었는지 모르지만 소장할 때 보다 빌려와 있을 횟수가 더 많은 듯싶다. 절판된 책이지만 도서관에서 빌려 볼 수 있으니 다행이었다.


일본의 작은 섬에서 살던 야마오 산세이의 책을 읽다 보면 반평생 귤밭을 떠나지 , 죽음이 찾아올 때까지 자연에 푹 빠져 지냈던 아버지를 떠올리는 단서들을 찾을 수 있었다.

그것 들은 꽃과 나무, 비파 열매, 섬, 바다 같은 자연들이었다.


그리고 매실나무 과수원 주인이 심은 비파나무이야기가 있다. 비파 열매를 따러간 에피소드와 함께 사진 한 장이 실려 있다. 수확한 비파 열매를 찍은 흑백 사진인데, 때마다 귤색처럼 익은 비파 열매의 맛과 향기가 선명해다.

키가 컸던 비파나무는 열매를 따기도 쉽지 않았지만, 비파 열매는 쉽게 물러지기 때문에 열매가 달린 가지째 꺾는다. 그래서 어렸을 적 나는 가지를 잡고 열매를 떼어먹었다. 자두 만한 열매를 나무에서 바로 따 먹는 듯 자연 그대로였다.


책을 펼치면 귤 밭에 있던 비파나무 3그루가 생각나고, 내 추억은 책 <여기에 사는 즐거움>에 실린 사진삽입되었다.


비파 열매는 쉽게 물러지기 때문에 열매가 달린 가지째 꺾는다. 가지를 하나 씩 잡고 열매를 먹었던 기억이 선명해진다.(책에 실린 사진)



사실 오랜만에 빌려온 건 파 열매 때문이 아니라 "다만 나팔꽃이 피어 있을 뿐인데"의 에피소드가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로 나팔꽃 때문이다.


나도 그처럼 아침마다 새로 핀 나팔꽃을 세어보고 싶어서 늦은 여름 나팔꽃 씨앗을 심었다.


먼저 심었던 나팔꽃은 8월 초부터 꽃 피기 시작했는데, 그만 벌레가 생겨서 모조리 뽑아내야 했다. 덩굴을 따라 벌레들이 번지면 베란다에 있는 식물이 점령당하는 건 시간문제였다.

그래도 남은 씨앗이 있었기 때문에 기회는 있었다. 갖고 있던 나팔꽃 씨앗을 텃밭상자와 빈 화분에 모조리 심었다. 분홍색, 파란색, 보라색 나팔꽃을 종류별로 심었지만 꽃이 피어야 구분이 될 듯하다. 심는 날은 기억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싹이 돋아나고 얼마 되지 않아 잊어버렸다. 팻말을 세워두면 좋았을걸, 꽃이 피면 곧 확인할 수 있을 거라 걱정은 내려두었다.


두 번째 심은 나팔꽃은 잘 자라서, 지난 9월 5일부터 좁은 잎 나팔꽃이 먼저 피었다. 탐구생활 숙제를 하듯 매일 아침 나팔꽃이 몇 송이 피었는지 야마오 산세이처럼 기록을 한다.



하루에 두 송이, 세 송이 피더니 오늘은 아홉 송이가 피었다. 색색이 핀 나팔꽃을 기대하고 있는데 아직 분홍색과 보라색 나팔꽃은 보이지 않는다.


나는 무엇을 기대하고 있던 것일까? 나팔꽃이 화려한 아침을 열어주길 바란 건가? 알록달록 꽃 같은 단어들로 빈 노트를 채워 보려고 했을까? 식물들과 노닥거리며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여기는 법을 떠올려 보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매일 아침 나팔꽃이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영광스러운 아침을 기꺼이 맞으며, 늦여름을 즐기라고 말이다.

나팔꽃의 영어식 이름은 모닝글로리(Morning glory), 말 그대로 아침의 영광이다. "다만 나팔꽃이 피어 있을 뿐인데" 내게도 즐거운 일과가 생겼다.





나의 아침은 이렇게 나팔꽃 수를 세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내가 피는 것이 아니고 다만 나팔꽃이 피어 있을 뿐인데. 나는 마치 내가 피어나는 것처럼 분발했다.

자기 안이나 바깥을 불문하고 우리에게 선한 것으로 나타나고, 아름다운 것으로 나타나고, 사랑스러운 것, 행복한 것. 고요한 것, 영원한 것, 진실한 것으로서 나타나는 것은 모두 신이자 신의 숨결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신을 천국에만 가둬 둘 필요는 없다. 신은 삼라만상으로서 하늘 구석에도 있지만 이 지상에도 가득 차 있어서 우리가 그것을 바라기만 하면 얻을 수 있는 존재다.

매일 아침 골짜기 물을 끌어오는 수도에서 얼굴을 씻고 그 뒤로 오늘은 몇 송이나 피었나 송이 수를 세며 한 송이 한 송이 꽃을 바라보는 일이 이 여름의 조촐한 나의 기쁨이다. 오늘은 서른일곱 개. - 오늘은 마흔다섯 개.라고 세어 간다.

<여기에 사는 즐거움>
-'다만 나팔꽃이 피어 있을 뿐인데' 중에서


그는 나팔꽃을 보며 지상에 가득 차 있는 생명의 고마움을 써 내려갔다.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 어린 시절 아침에 핀 나팔꽃 수를 세며 보냈던 시간을 그는 선명하게 기억해 내고 있었다. 나팔꽃은 점점 꽃이 많아지다가 어느 날부터 시들해지며 꽃이 줄어들었다. 그런 나팔꽃을 보면서, 뭔가에 대단히 열중했다가 시들해지는 기분을 알게 된 듯했다.

그가 어린 시절부터 가졌던 철학적인 관심도 나이를 먹어가듯 점점 더 깊어진 듯했다.




내가 심은 나팔꽃 덩굴도 사연은 많다.

늦봄에 씨앗을 듬뿍 뿌렸지만 한 번 실패를 했고, 두 번째는 파종시기도 지난 늦여름에 심었는데도 나팔꽃은 다정한 얼굴로 찾아와 주었다. 참 어눌하고 엉성한 솜씨인데도 나를 미워하지 않나 보다. 밖에서 보는 나팔꽃 덩굴과는 비교가 안되지만 말이다.


단지 앞 화단에서 1층 베란다 난간까지 뻗어 올라간 나팔꽃 덩굴엔 셀 수 없을 만큼 꽃이 매일 아침 피어난다. 작년에도 베란다 화분에 나팔꽃을 심었지만 한꺼번에 핀 꽃이 다섯 송이도 되지 못했다. 아무래도 실내에선 일조량이 부족한 듯싶다.


어쩌면 아홉 송이가 핀 오늘이 가장 많이 핀 날일 지도 모르겠다. 내일은 더 적게 피어도 다음날은 더 많이 피어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매일 딴생각으로 한눈을 팔았는데, 오늘 아침 "아홉 송이의 나팔꽃"이 알려 주었다. 날마다 [오늘이 최고의 날]인 것을 왜 몰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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