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아는 장례식

은행나무의 부고

by 무쌍

전기톱 소리가 이른 아침부터 요란했다.

수상한 톱소리는 한참을 떠들다가 잠잠해졌다. 가만히 듣다 보니 지난 초봄에 들었던 익숙한 소리였다.

집 앞 인도에 서있던 은행나무 3그루가 전기톱 몇 번에 잘려나간 모양이다. 작업하는 소리는 분명히 들었지만 나무가 잘리는 광경은 보지 못했다. 은행나무 수형은 다른 나무에 비해서 수직으로 뻗어 올라가는데, 곧게 뻗은 모습을 몇 번이나 눈여겨보았을까?

수없이 그 아래를 걸어 다녔는데, 나무가 어떻게 생겼었는지 떠오르지 않았다.


마치 사건현장인 듯 방금 벌어진 일을 예측할 수 있었다. 주변은 아직 정리를 하지 못하고 출입금지 줄이 둘러져 있었다.


작업하던 남자들이 자리를 비우자 나무 그루터기를 찍었다. 사진을 찍고 있는데 지나는 사람들이 한 마디씩 말했다.


"나무 잘라버렸나 보네."

"왜 잘랐을까"


한 할아버지가 "미련한 짓들을 했네." 며 혀를 차며 지나갔다.

보도블록이 깔린 인도는 좁은 편이 아닌데 나무가 없어지니 더 휑해 보였다.


2023.9.8(잘린 나무의 그루터기)


그러고 보니 자전거를 쾌속질주하던 사람들은 좋을지도 모르겠다. 쌩쌩 달리는 자전거는 보행 안전 표지판도 무시했는데... 그러고 보니 나무 뒤로 멈추지 않는 자전거를 피하던 아이들 모습 떠올랐다.

걸림돌, 아니 걸림 나무가 된 것일까?

아니면 은행나무 열매 때문일까? 머릿속엔 나무가 없어져야 할 이유를 찾고 있었지만, 또 나무를 없애지 않아야 하는 이유들이 더 선명해져 갔다. 나무가 잘린 곳엔 아무런 안내가 없으니 무가 사라져야 할 이유는 알아내지 못했다.



고인을 위한 장례식처럼 나무와 잠시 시간을 좀 갖고 싶었다.

어제 본 게 마지막이 될 줄 몰랐어.


나무도 "이렇게 될 줄 몰랐어."라고 대답하는 듯했다. 30년이 넘은 아파트 단지엔 나이가 지긋한 나무들이 많다. 나무가 잘려나갈 때마다 섭섭해지는 건 그 나무의 인생을 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누군가 세상을 떠났을 때, 어쩔 수 없었다고 쉽게 대답할 수 없다. 설령 자연에서 벌어지는 죽음이라도 말이다.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은 한편으론 살아 있는 고마움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오늘 하루를 잘 지냈는지 스스로에게 묻는 일이 중요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2023.9.8


네모 반듯한 자리에 남은 그루터기는 제주에 있는 할아버지 산소처럼 보였다. 제주의 전통식 묘지인 할아버지 산소는 매년 콩과 감자를 키우는 밭에 직사각형 모양의 산담 안에 비석을 세웠다. 학교도 들어가기 전에 벌초를 따라갔는데, 할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셨다.


비석 옆엔 작은 배롱나무가 있는데, 세월이 흘러도 나무의 껍질이 겹겹이 벗겨지면서도 가지를 많이 뻗지 않았다. 산소의 주인이 누구인지 안는 듯 나무는 다정하게 곁을 지켜주는 듯했다.


오후가 되니 나무가 있던 자리는 파묘처럼 푹 파인 흙만 남았다. 그 자리에 무엇이 생길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다.

은행나무 3그루가 없다 것 말고는 말이다.




사진으로 남은 이태리포퓰러 나무

나만 아는 나무 장례식은 얼마 전에 또 있었다.


수목 제거 안내가 붙었던 중랑천 산책로의 고목들을 기어이 잘리고 뿌리까지 뽑혀 사라졌다. 남은 가로수들도 벌벌 떨고 있는 걸까? 큰 나무들은 온 데 간데없으니, 작은 나무들이 만든 그늘은 겨우 한 사람을 가릴 만큼 작아졌다. 번호표가 붙었던 제거 대상 나무는 남김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 자리엔 전기 플러그처럼 생긴 콘크리트 덩어리가 들어앉았다.


연말이 되면 공사가 끝이 난다고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밤엔 가로등 조명이 환하게 산책로를 밝혀준다고 한다. 새로 세워질 가로등은 그 자리가 마음에 들려나.

공사가 다 끝이 나면 가로등을 만나러 가야겠다. 낮엔 불이 꺼져 있을 테니. 밤산책을 나가게 되면 물어봐야겠다.

그 자리에 있던 나무를 참 좋아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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