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겨울 시작된 꿈

아보카도 두 개

by 무쌍

한겨울 빈 화분에 싹이 올라왔다.

물을 주고 기다렸더니 초봄에 꽃으로 보답해 주었다. 파란색 나팔꽃이었다. 봄도 끝나지 않았는데 꽃들은 토실한 씨앗을 한 줌 주고 떠났다.


나팔꽃이 떠나고 여름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시든 나팔꽃 덩굴을 정리하지 않고 그대로 둔 채 꼬투리마다 씨앗이 여물기만 기다렸다. 바짝 마른 갈색 덩굴 옆에 둥글고 곧은 연두색 줄기가 솟아났다.


손바닥만 한 파란색 도기 화분엔 미쳐 싹이 트지 않았던 다른 씨앗도 들어있었나 보다. 그런데 가족 누구도 다음차례가 누군지 알지 못했다. 풀포기라고 하기엔 뭔가 나무스러운 구석이 있었다. 그동안 싹이 났던 도토리, 감, 레몬과는 다른 이파리였다. 손톱만 한 잎은 점점 커지더니 마른 월계수 입처럼 반듯하게 펼쳐졌다. 뻗어 나온 잎은 마치 우산처럼 화분을 빙 둘러 아 나더니 줄기도 길어

형태가 잡히니 사진 검색을 할 차례였다. 예전에 처음 보는 싹을 나무만큼 키웠다가 독초인걸 알고 화분 통째 버린 적이 있었다. 모양은 달랐지만 독초가 아니길 바라면서 사진을 찍었다.

검색결과는 '아보카도' 나무였다.

지난겨울 아이들에게 덮밥을 만들어 주려고 사 왔는데, 나만 배부르게 먹었다.


공처럼 동그란 아보카도 씨앗을 그냥 버리긴 너무 아까웠다.

수경재배로 뿌리를 내리는 건 자신이 없었다. 물관리도 쉽지 않지만 여태 흙에 키워서 실패한 것보다 훨씬 많은 실패를 맛보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식탁 위에서 아이들 손에서 뒹굴다가 화분으로 들어갔나 보다. 두 알이었는데 하나만 싹이 돋았으니 절반은 성공이었다. 뜻밖에 받은 선물처럼 기분이 좋았다.


볕이 잘 드는 창가에 두었더니 아보카도 나무는 키가 30센티 가까이 자랐다. 곁가지를 내주려고 윗부분을 조금 잘라 주었더니, 생각처럼 Y자는 되지 않았지만 양 옆으로 순이 올라왔다.

열대야가 심했던 한여름, 아보카도 옆에 새싹이 돋았다. 드디어 두 번째 아보카도가 세상에 빛을 보는 순간이었다. 두 개가 함께 들어갔는데, 발아가 넉 달 가까이 차이가 났다. 어쩜 둘이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그러고 보니 아보카도도 하나만 먼저 익었던 기억이 났다. 연이 하는 일엔 그들의 시계가 따로 있었을 것이다. 아무튼 는 두 개의 탄생을 다 갖게 되었다.




나의 글쓰기도 그러했다. 빈 화분에 흙을 넣어 둔 것처럼 말이다. 무엇이 될지 모르는 씨앗들을 하나씩 심었다. 처음부터 이름도 있고, 특징도 확실한 품종을 갖고 있는 씨앗도 있었다. 먹다 남은 껍질과 함께 버려질뻔한 것도, 길가에서 주워온 것도, 혹은 꼬투리에 걸려 내 손에 온 것도 있었다. 내가 뱉은 말이 아니라 아이들의 입에서 나온 것도 있었고, 누군가의 입에서 나온 것들도 받아 적었다.


어쩌다 보니 글쓰기란 특권을 누리고 있다. 특히 누군가 읽어준다면 확실한 동기가 된다.

나를 더 좋은 사람이 되라고 채근하기도 하지만, 나의 병을 낫게 할 유일한 약이 되었다. 내가 겪었던 상실을 인정하고 로하는 어떠한 패턴을 찾은 후부터는 속 쓰게 되었다. 상은 쓰기가 우선이고, 글을 쓰려고 걷는다. 침내 나는 글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게 되었다. 글쓰기는 나만의 치유 활동인 셈이다.


한 손에 들어갈 만큼 작은 화분엔 아보카도 나무 모종 두 그루가 자란다. 각방을 쓰게 하고 싶지만 좀 망설여진다. 아직도 내 것 같지 않아서일까? 혹시나 문제가 생길까 봐, 실패할 까봐 걱정되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나의 의도는 딱 그 화분에서 죽지 않고 살아 주는 것인데 씨앗이 자라 나무가 되는 일은 그리 자주 있는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들이 커가는 모습을 보는 건 현실이지만, 보이지 않는 힘이 존재하는 차원을 목격하는 기분이 든다.




이제는 모종이 되어버린 아보카도, 나도 그러고 싶다.

운이 좋아 나무가 되면 그늘을 만들어 주고, 때가 되면 열매가 달리는 나무 말이다. 시간이 걸려도 나무가 된다면 헛된 꿈은 아니었으리라. 지난겨울에 시작된 꿈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아홉 송이의 나팔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