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것은 돈 뿐이라고, 자식과 남편은 돈을 벌어오는 사람이고, 자신도 돈을 벌지 않고서는 불안에 미쳐 자식과 남편을 더 달달 볶는다.
돈은 나도 좋아한다. 싫어할 수가 있나. 그런데 돈이란 멍하니 보내는 시간처럼 그냥 별일 없이 사라지기도 했다. 무슨 일인지 모두 기억나지 않지만 내 돈은 가족의 돈이라는 기분을 너무 오랫동안 지켜왔다.
내겐 빌려준 돈을 받지 못해도 그냥 내버려 두는 사람 목록이 있다. 정기적으로 돈을 송금해야 하는 사람 목록도 있었다. 월급 통장이 사라진 후에도 송금은 끝나지 않았다. 생활비를 조금 줄이면 그만큼의 송금액이 마련되었다.
돈이란 참 고약한 자식인가 보다. 돈을 좋아하는 사람에겐 소식 없는 자식 때문에 속이 터지니 말이다.
얼마 전에 내 명의로 세금우대 통장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내가 아닌 가족이란 이유로 세금우대 혜택을 받고 있다는 걸 말이다. 삶의 주도권이 없었던 것이 바로 그 통장이 증명해 주었다.
과잉 생각이 발생했다. 생각이 넘치고 산이 될 것 같아 집을 나섰다. 시계를 보니 오후 5시, 나만의 루틴 산책을 나설 시간이었다. 어제 본 야생화가 얼마나 피었는지 궁금해졌다.
꽃 봉오리를 풀어헤친 미국제비꽃(종지나물)을 용케도 양팔을 벌려 앉아 있었다. 가을에 핀 봄 야생화를 찾는다는 건 네 잎클로버만큼이나 내겐 의미가 있다. 왠지 나만의 발견이 대단한 행운인 듯이 들뜨게 하기 때문이다. 사진 몇 장을 찍고 해바라기 꽃밭으로 향했다.
나무처럼 키가 켰던 해바라기들이 모두 지팡이처럼 휘었다. 아예 꺾여서 바닥에 닿은 꽃도 있지만, 대부분은 내 머리에 닿을 듯 땅으로 고개를 숙였다. 해바라기 씨앗이 단단해질수록 꽃송이도 무거워지나 보다. 많이 가질수록 지켜야 할 무게도 감당해야 하는 현실처럼 말이다.
꽃을 보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고요함이 느껴졌다. 자연이 주는 다정한 감수성을 보는 것 만으로 내 불안증은 말랑하고 보드라워졌다. 매일 나가지는 못하지만 오후 5시 산책을 놓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즐거운 소설책을 읽고 난 듯 끝이 주는 행복감에 있다. 곧 계절이 바뀌겠지만 자연이 주는 계절 선물은 언제나 비슷한 성능을 가졌다. 바로 지금을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연휴라서 인지 공원엔 사람들이 평소보다 많았다. 벤치에서 자식 자랑을 늘어놓고 있는 한 할머니를 보았다.
" 아들이 어제 사 왔더라고. 꼬박꼬박 지 엄마 좋아하는 거라고 사들고 와. 아주 효자여."
" 좋겠네. 아들은 돈을 좀 버나 보네."
" 아녀 착해빠져서 형제들 중에 제일 못살아."
" 아이고 그럼 그 아들한테 할머니가 돈을 좀 주면 되겠네요."
"...."
" 왜? 도와주면 아들도 좋을 텐데."
" 지가 알아서 살아야지. 나도 돈 없어."
처음부터 듣지는 못했지만, 대화는 생생하게 내 귀에 들렸다. 그리고 그 착한 아들이 어떤 상황인지 알 듯도 했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이지만 홀로 사는 어머니를 지극히 섬기는 듯했다. 그런데 왜 엄마는 왜 혀를 차며 그 착한 아들을 부정적이게 말했을까?
암에 걸려 죽은 자식이 가장 착했다는 어느 할머니의 탄식이 연달아 떠올랐다.
가끔 놀라곤 한다. 자신도 가난해 앞가림도 힘든데도, 가족이라는 사람들을 위해서 돈을 퍼붓는 사람 말이다.
돈독한 애정으로 엮이지 않은 가족은 구성원 중에 희생자 역할을 누군가가 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가장 최고의 권위를 가진 자도 반드시 존재한다. 부모가 자식을 말할 때 경제적인 면을 부각하면서 능력이 있다 없다는 식으로 평가한다는 것이 바로 증거다.
" 착해빠져서 형제들 중에 제일 못살아."
나는 그 나이 든 여자의 말을 곱씹고 있었다. 아쉽게도 산책의 효과는 금방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자신은 손에 크림도 제대로 바르지 않으면서 백화점 유명 브랜드의 수만 원짜리 핸드크림을 어머니에게 수년간 사드렸다는 작가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작가는 아주 단편적인 사실만 썼지만 나는 그 맥락을 모두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는 소박한 일상을 좋아하고, 단정하고 귀여운 문장들을 요리조리 유쾌하게 섞는 문체를 가졌기 때문이다.
그녀는 어머니를 돋보이게 하려고 노력했을 것이고, 자신은 더 소박해졌을 것이다. 나도 그러했으니까 말이다.
글을 쓰며 우울함을 떨쳐내고, 그림자를 뒤로하고 나를 더 밝은 곳으로 나가게 했다. 하지만 한이 맺힌 것처럼 삶의 조각들을 나열하면서 어두운 면모를 부각하고 싶지 않았다. 하소연을 하려고 글을 쓰는 것이 아니었는데, 이야기는 자꾸만 과거로 갔다.
억눌린 감정들을 먼지처럼 털어내고 말끔한 문장들로 채워가면서오늘을 쓰고 싶다. 누구나 굴곡진 삶을 살지 않는가. 귀여운 문장을 쓰는 그녀를 처럼 나도 그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