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기지 않으려고 했다. 들키고 싶지 않을 때 보다 털어놓는 것은 몇 배는 더 고통스러웠다. 두통이 꼬박 3일을 머물다가 떠났다. 참지 않고 타이레놀을 먹었지만 정말 몇 시간 동안만 허니문이었고, 똑같은 통증이 나를 괴롭혔다.
두통약 말고는 어떤 것도 효염이 없었는데, 꽃은 보고 싶었다. 매일 중랑천 코스모스길을 남편과 나서긴 했는데, 꼬박 3일 내가 두통을 앓는 동안 꽃밭도 쑥대밭이 되고 있는 중이다.
첫날은 의자만 한 자리가 어제는 서너 사람이 서있을 정도가 되었고 오늘은 10명도 서 있을 만큼이다, 들어가지 마시오 팻말은 내동댕이 쳐있었고, 이런 구멍은 한두 군데가 아니다.
만발해진 꽃물결에 가려서 보이지 않다가 갑자기 나타난 구멍을 보며 지나가는 사람들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처음 보는 사람은 들어가라고 만들어 놓았나 중얼거리더니, 뽑힌 '들어가지 마시오' 팻밭을 보더니 '아이고' 소리를 냈다.
들어가지마세요
두 여자가 꽃이 예쁘다고 탄성을 지으면서 지나가다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리고 서있는 내게 말을 건넸다.
"어머 이게 왜 이래요??"
"어제는 없었는데 저도 모르겠네요."
하루 만에 생긴 자리는 정말 놀라울 정도였다. 근처에 너구리가 출몰했다고 하던데 그들의 소행일리는 없어 보였다. 해마다 이런 풍경을 보고 글을 쓰는 기분은 술에 취해서 똑같은 말을 또 하며 머리가 멍해지는 듯 아무 의미가 없는 말 같다.
꽃을 심어놓고 물을 잘 주지 않는다며 핀잔을 하는 할아버지는 꽃들이 금방 질 거라며 혀를 찼다. 중랑천에 꽃을 보러 나온 사람들 틈에 여러 가지 목소리를 들었다. 아무래도 코스모스 꽃밭은 계속 훼손이 될 듯 하다. 내 두통은 나아지고 있는데, 꽃밭은 가망이 없는 것일까. 머리가 지끈거려 꽃밭을 나와서 반대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지난 주말에 보았던 나팔꽃 언덕을 향해 갔다.
아무것도 없었다. 갑작스러운 이별을 경험하는 건 한두 번도 아닌데 섭섭했다. 눈앞엔 베어진 풀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고, 나팔꽃 언덕엔 잘린 풀이 그루터기만 남았다.
지난 늦여름 똑같은 풍경을 보았다. 하지만 여름 기운이 남은 태양은 곧 새롭게 나팔꽃덩굴을 돋아나게 했고, 언덕은 금방 꽃동산이 되었다.
오늘 본 두 번째 제초는 희망이 없다. 다시 볼 수 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이별은 매번 힘들다. 꽃에게 위로받으려던 마음도 사라진 꽃들처럼 어디론가 사라졌다.
누군가를 아낌없이 사랑한 적이 있는가
책을 읽다가 발견한 이 문장이 떠올랐다.
아낌없이 사랑했다면 이별도 죽음도 인정해야 할 것 같았다. 불편한 감정들을 드러내고 당당해지고 싶었다. 꾸역꾸역 글을 쓰다가 보니 더는 숨고 싶지 않아 졌다. 진심으로 사랑한 연인이라면 어쩔 수 없는 이별도 사랑이란 걸, 아낌없이 사랑을 했다면 후회도 없지 않을까?
한때는 사랑했던 사람들을 이제는 만나지 않는 나를 위로하고 싶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다독여주고 싶었다. 한편으론 예전에 나를 그리워해주길 바랐는지도 모르지만, 그런 기분도 다 맞장구를 쳐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내 말을 들어줄 상대가 더 고통스럽거나 사라져 버렸으니 입을 꾹 다물어야 했다.
이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계절이 한 일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야생에서 무언가를 저지르고 방치하고, 없앤다. 그 모습이 꼭 내 처지 같았다.
상강, 계절이 바뀌었다. 초록색이던 은행잎은 노랗게 물들어 낙엽이 되었다. 그러니 망설일 수가 없다. 살아 있는 존재는 언제나 이별하고, 그 끝은 정해져 있지 않은가.
오늘도 몇 시간이 남지 않았다. 코스모스 꽃도 오래 머물지 않을 듯싶다. 괴롭히는 존재가 보기 싫어서든, 스스로 다음 계절을 받아들이던, 결국 겨울이 올 것이다. 끝은 너무도 잘 알지만, 나는 내일도 코스모스가 피어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