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나를 기쁘게 해 주던 나팔꽃은 3일째 감감무소식이다. 시든 꽃은 둥근 구슬처럼 여물어 씨앗이 되려는 듯, 여름이 끝난 뒤론 나팔꽃은 말이 없긴 했지만내 기분도 서늘해진 듯싶다.
꽃이 없어서 글을 안 쓰는 것도 아닌데, 나를 이끌어 줄 꽃 한 송이가 필요했다. 시험기간인데 소설책이 더 보고 싶던 예전처럼, 나는 또 할 일을 앞에 두고 꽃을 볼 궁리를 시작했다.
이른 아침, 어제저녁에 핀 분꽃은 이미 시들었고, 나팔꽃은역시나 기별이 없다.열어 둔 창문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은 놀랍게도 차가웠다. 이렇게 찬 공기가 주변을 바꾸어 놓았는데, 꽃들도 마냥 웃고 떠들 시간은 없었나 보다. 겨울은 금방 올 테니 말이다. 늦가을까지 나팔꽃을 볼 생각이었는데 나는 꽃에 대해선 아는 것이 없었다.
꽃이 보고 싶은 마음을 집 안에서 투덜거릴 것이 아니라, 핀 자리를 찾아 나서면 될 일이었다.
익숙한 거리로 나와 중랑천으로 향했다.
야생의 들판은 더 가혹했다. 둘둘 말려 실타래처럼 변한 나팔꽃 덩굴 틈에 겨우 바닥을 기어가며 핀 꽃송이가 보였다. 바람에 살랑거리듯 늘어진 덩굴은 이제 없었다.
손처럼 뻗었던 덩굴손은 바짝 말라가며 스스로 몸을 작게 감고 있었다. 여름이 끝이 난 것이다.더는 활기차게 뻗어 나갈 줄기는 없어 보였다.
2023.10.3(중랑천 수변공원에 코스모스 꽃밭)
수변공원 꽃밭엔 초록으로 새로 돋아난 코스모스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그리고 작은 등처럼 켜진 꽃잎은 다른 계절이 시작했음을 알려주었다.
지금 꽃이 피던지, 씨앗으로 여물던지 다음 해로 넘길 것인지 결론을 내라고 말이다. 뭐든 상관없다고 재촉하지만 나는 잘하고 싶었다. 두 번 다시 기회는 없을 거라고하면서도 미루는 일이 익숙했었나 보다.
단 한 번의 기회를 얻은 꽃은 눈앞에 환하게 피었지만, 나는 어디에 있는 걸까? 매일 같은 날이고 하루가 다 인 것을, 인생이란 무상한 것을 알게 되었는데도. 나는 묻고 있었다.
차라리 나팔꽃처럼 더는 안 하겠소라고 입을 다물어 버리면 될 텐데, 대답은 내가 하면 되는데 말이다.
코스모스 한송이, 작은 등 하나가 켜졌다. 사방에 코스모스 꽃이 가득 채울 때까지 누구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완전히 만발해져야 꽃은 대답할 테니까. 다 끝이 났노라고.
길고 긴 날들이 나에게 알려준 건 인생의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그리고 입구에서 시작한 인생의 끝을 어느 정도는 구체적으로 예상할 줄 알게 되었다. 작년 아버님이 떠나시고 추석을 맞은 우린 아이들과 함께 작은 절에서 초봉양을 했다. 막내는 아직도 한글 쓰기가 서툰 나이고, 막내인 남편은 아직도 어리광을 부리고 싶을 텐데 인생이란 기다려주시지 않는다.
남편이 스스로 묘비명을 써보았다면서 내게 말했다. 그리고 나의 묘비명도 만들어보라며, 우리만 남은 인생을 어떻게 보낼지 생각해 보라고 말이다.
어찌 보면 묘비명이란 "어떻게 무엇을 했는지" 참 간단한 한 줄이었다. 하지만 오늘 하루를 빙빙 돌며 모른 척하고 있다.
나의 묘비명은 아직도 정하지 못했다.
인생이란 작은 등 하나가 켜졌다가 꺼지는 것처럼 단순한 것일지 모르겠다. 오늘 코스모스꽃 한 송이가 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