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때나 가도 편의점 코너에서도 살 수 있고, 마트 매대에도 잔뜩 진열되어 있으니 걱정은 없었다. 종류별로 언제든 먹고 싶은 빵으로 고를 수 있으니 별일도 아니었다. 친구들이 자랑할 때는 부러워하더니 금방 관심이 없어졌다.
한동안 띠부띠부씰 모으기를 해보고 싶다고 했지만, 아이는 몇 개 사 먹고는 원하는 캐릭터가 나오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포켓몬빵 구하기 소동은 끝나지 않을 듯했지만 이젠 옛날이야기가 되었다. 처음에는 방법을 몰라 아이를 따라 동네 편의점을 몇 군데를 돌았던 적도 있었다. 결국엔 반 친구를 따라간 아이는 친구 찬스까지 써서 겨우 빵을 하나 구해왔다. 친구와 편의점에 줄을 서서 가위바위보를 하고 영수증을 받고 다음날 빵을 찾으러 갔었다. 치즈도 좋아하지 않으면서 치즈빵이 되었지만 웃는 얼굴이었다.
아이 친구 엄마들은 능력껏 구해서 먹이는 걸 나는 그냥 구경만 했었다. 희귀한 상품이던 때가 있었다니 까마득했다. 브런치에서도 빵 구입 일화가 도배되기도 했었는데 말이다. 예전에 팔았던 빵이라고 하지만 그때도 나는 그 빵의 존재를 몰랐다. 아이는 엄마가 그때도 그랬냐며 어이없어했다.
그러고 보니 신기한 감자칩 과자를 구하러 다니던 직장동료가 생각났다. 먹어보라고 구해준다고 했지만 크게 관심이 없었다. 요즘은 마트에서 쉽게 살 수 있는 과자가 되었지만 말이다.구하기 힘든 유명한 상품들은 여전히 존재하는 것 같다.
나의 호기심은 그런 유행에는 둔감하다. 하지만 아이들은 엄마 덕분에 손해를 본다고 했다.
어린이날 선물로 구하기 힘든 장난감이라며 동네 엄마들이 공동구매를 할 때도 나는 하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아이가 알면 짜증 낼 일이지만 말이다. ^^; 아이는 엄마가 친구들은 다 있는 걸 안 사줘서 미워했지만 나의 고집은 죄책감이 없다. 유행하는 것 대신 다른 것을 아이에게 사주었기 때문이다. 세월이 흘러보니 사줬어도 지금은 정리된 장난감처럼 남아 있지는 않았을 듯싶기도 하지만 나도 참 고집스러웠다. 어쩌면 남들이 다 보는 베스트셀러 책을 보기 싫어하는 이유와 비슷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장 보러 갔다가 물가는 올랐는데 작년 보다 가격이 저렴해진 샤인머스캣을 들고 왔다. 수년 전엔 한 송이가 삼만 원이었던 것 같았는데, 요즘은 만원에 3-4송이도 살 수 있다.
한 송이에 4천 원 남짓이면 달콤한 샤인머스캣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비싼 몸값에 구하기도 힘든 시절이 있었다는 것이 떠오르지 않을 정도다.
아주 오래된 이야기다. 생신날이라 친정 식구들이 다 모였다. 동생이 백화점에서 사 온 귀한 과일이라고 망고빛 나는 청포도를 들고 왔다. 신기했다. 아이들이 달려들어 맛을 보고 싶어 했지만 차례가 오지 않았다. 아이들을 달래고 있었다.
"엄마가 나중에 사줄게."
"언니는 이거 못 사 먹을걸."
"아니야 엄마가 나중에 사줄게"
"이거 얼마인 줄 알면 절대 못 사 먹어."
걸음마를 하는 아이와 어린이집에 다니던 시절이라 기억도 못하는 이야기지만, 이상하게도 샤인머스캣을 볼 때마다 그 말이 오버랩되었다.
아이들에게 샤인머스캣을 맘 놓고 사준 건 그날로부터 한참 시간이 흐른 뒤였다. 철마다 청포도가 나오면 아이들이 좋아했는데, 얇은 껍질에 씨앗도 별로 없어서 편하게 먹일 수 있었다. 가격도 저렴했고, 잠깐 나오는 품종이었기도 해서 나오기가 무섭게 몇 박스 사다가 두고두고 먹었다. 그런데 샤인머스캣이 나오자 청포도가 자취를 감춰버렸다. 청포도를 구할 수 없으니 수입 청포도를 사다 주었는데, 아이들은 다른 맛이라고 했다. 그래도 요즘은 샤인머스캣을 사다 주면 되니 별일도 아니다.
하지만 나는 어린 시절 먹었던 청포도 맛이 그리워서 인지 예전에 먹던 청포도 맛이 참 아쉽다.
샤인머스캣은 어딜 가도 저렴하고, 쉽게 살 수 있는 흔한 과일이 되었다. 한때는 구하기 어렵던 포켓몬 빵도 고가의 샤인머스캣도 옛날이야기가 되었다. 그때는 그랬는데, 지금은 달라진 것은 참 많다.
그때는 내 처지가 서글펐는데, 지나고 보니 그럭저럭 살아온 날들이 모두 감사했음을 느낀다. 내세울 것도 없고, 허세를 부릴 배짱도 없지만, 여태껏 무탈하게 아이들과 잘 지내고 있는 것이 소중함을 잘 알기 때문이다.
"우리는 같은 배를 타고 같은 곳을 향해가는 나그네들 아닌가."라고 하신 법정 스님이 말씀을 잊지 않고 있다. 아이가 먹고 싶은 빵을 사다 줄 수 있는 것도, 이제는 지난 일이라 털어놓을 수 있는 것도 세월이 알려준 것들이다. 당장 갖지 못한다고 조바심 내지 않으며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또다시 해본다.
아이가 포켓몬 빵 띠부띠부씰 가격을 알아내고는 목청이 커졌다. 빵값보다 열 배는 비싼 가격에 거래가 된다고 한다. 여전히 내가 잘 모르는 세계는 존재하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