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엄마노트

인형의 리즈시절

피카추와 꼬부기

by 무쌍

피카추와 꼬부기, 오직 아이의 품에서만 살던 인형들이 덩그러니 한가해졌다. 세월이 세상을 바꾸어 놓았다.


손에 들고 다니거나 옆구리에 끼고 다니던 인형 대신, 성능 좋은 스마트폰을 들고 다닌다. 보송하고 포근한 맛은 없겠지만 아기자기한 이모티콘이 넘치고, 노래도 나오고, 그림도 그리고,.... 뭘 또 하는지 모르겠지만, 아참 게임이 빠질 수 없겠다.


꼬부기는 유치원 장날에 사들고 왔고, 피카추는 태권도학원에서 쿠폰 장터날 사들고 왔다. 제값 주고 산 장난감들은 금방 잊혔지만 인형은 어딜 가나 소지품으로 챙기고 다녔다. 특히 집과 멀어지는 일정에는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었다. 젠 충전기와 이어폰이 덩달아 따라가는데, 꼭 보조배터리도 딸려간다. 인형은 이제 유효기간이 끝이 난 듯싶다.


옷장을 정리하면서 버려야 하는 것들이 하나씩 모아졌다. 구멍이 보일 듯 한 양말들과 작아진 옷들처럼 신세가 같아진 걸까? 왠지 측은해져 인형을 세탁했다. 손때 묻은 흔적은 좀 지워졌지만, 희미해진 색처럼 유아기 아이의 리즈 시절은 멀어져 버렸다. 달아 피카추와 꼬부기의 왕년에 사랑받던 전성기도 이다. 바람이 빠진 풍선처럼 홀쭉한 배에 빵빵했던 얼굴도 주름이 생겼다. 어쩐 내 처지와 비슷해 보이는 인형을 나란히 세워두고 집안을 오가면서 눈길을 주었다.

"엄마 꼬부기 빨았어?"

반가운 아이의 목소리를 들었다. 아이가 인형을 코에 갔다 대고는 냄새를 맡더니 피씩 웃는다. 잠시 안고 있었지만 거실에 뒹굴고 있는 꼬부기는 잠을 잘 때가 되어도 그대로다. 인형이 없어도 잠만 잘 잔 인형 주인은 한 손에 스마트폰을 챙겨 들고 학교에 가버렸다.


활용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다가, 장난감이 들어 있는 봉투를 보았다. 장난감을 모으느라 공을 들인 시간이 얼마나 되었을까? 아무튼 귀여운 장난감도 유효기간이 끝난 모양이다.


동네 백일홍 꽃밭이 흰 가루병으로 잎이 하얗게 변했다.

겨우 더운 여름을 넘기고는 선선해진 바람에 새꽃이 피나 싶었는데, 백일홍은 마지막을 감기에 걸린 것처럼 바이러스에 걸린다.


집 안에서 키운다고 해도 이 바이러스를 피해 가긴 어렵다.

꽃을 오래 볼 수 있어 좋지만 끝은 늘 아픈 모습이라 아쉬운 점이 많았다. 금방 시들어 버리는 꽃은 이러지 않을 텐데, 백일홍은 오래 볼 수 있어서 인지 끝까지 애쓰는 자연 그대로였다.


계절이 사그라지는 것처럼 생명이 없는 물건들도 빛을 잃어 갈 수밖에. 필요 이상 소유하는 것도 싫지만 과거를 버리지 못하고 짐처럼 들고 다니는 것도 좋은 것은 아닌가 보다.


오늘이란 시간, 가족들이 저녁을 먹고 간 빈 식탁을 혼자 독차지하고 있으니 오늘 하루는 잘 끝나가고 있는 듯싶다.

금방이라도 겨울이 올 것 같은 선선한 밤이다. 날이 추워지면 피카추와 꼬부기 주인이 인형을 다시 찾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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